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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웃을 일 없는 청와대에 웃음 … 조윤선 소프트 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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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 3월 20일 당시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달 12일 역대 첫 여성 정무수석에 발탁됐다. 업무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3주 정도 지났지만 여성 정무수석으로서의 ‘소프트 스타일’은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화제다. 지난달 3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박근혜 대통령이 ‘3기 청와대 개편’ 이후 처음으로 주재한 회의였다. 박 대통령은 이날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의 필요성, 경제활성화 불씨의 재점화 등을 지시했다. 무거운 주제를 주로 논의한 만큼 회의는 진지하고 다소 딱딱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회의가 끝날 무렵 조 수석은 “김기춘 비서실장께서 ‘리허설’(사전연습)을 시켜줬는데, 리허설보다 못한 것 같다”는 농담을 했다.

 지난달 박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순방 중일 때 김기춘 비서실장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를 ‘리허설’에 비유하며 박 대통령 주재의 회의가 어려웠다는 점을 유머로 풀어낸 것이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 대부분이 활짝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조 수석은 3주 만에 청와대 안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자리 잡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 수석이 친화력을 바탕으로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고 평했다. 분위기 띄우는 데만 열중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청와대 인사는 “정무 분야의 보고 양이 늘었고, 종류가 다양해졌다”고 전했다. 조 수석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 참모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다양한 의견을 가감 없이 대통령께 전달해 대통령이 잘못된 정보를 갖고 판단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정무수석의 역할을 정의했다. “1안, 2안, 3안 이런 식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다양한 자료를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왼쪽은 조윤선 정무수석이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모습. 오른쪽은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예방한 조 정무수석. [오종택 기자]

 사실 정무(政務)라는 단어는 묘하다.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하는 일 중 정무적이지 않은 게 없다. 대통령이 누구를 만나고, 어떤 결정을 하는지가 모두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조 수석은 3~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내외가 방한할 때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의 의전을 담당할 예정이다. 정무수석의 보폭을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외교’로까지 넓히고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야당과의 관계도 일단 출발은 나쁘지 않다. 조 수석이 지난달 16일 야당 지도부를 예방했을 때 역시 첫 여성 원내대표인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조 수석을 환대했다. 3선 의원인 박 원내대표는 조 수석에게 여성 정치인의 어려움과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조언했고, 조 수석은 경청했다. 직업 외교관 출신의 박준우 전 정무수석이 초기에 야당뿐 아니라 여당 의원들과도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무수석은 한때 ‘왕수석’으로 통했다. 군사정부 시절에서부터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총재를 맡던 김대중 정부까지 정무수석이 사실상 여당과 국회를 장악하고 흔들었다. 불투명한 정치자금이 풍족했던 군사정부 시절에는 돈줄도 쥐고 공천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다 보니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정무수석 제도가 폐지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당·정 분리를 기조로 삼은 노무현 정부는 초반 1년 정도만 정무수석실을 유지하고 나머지 임기 4년 동안 정무수석이란 자리 자체를 없앴다.

 정무수석이 존재하지 않다 보니 당시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여당)의 관계도 악화일로였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정무수석실을 4년 만에 부활시켰다.

 부활한 현재의 정무수석은 과거의 ‘왕수석’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무수석실의 한 해 예산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청와대가 쓸 수 있는 특수활동비(올해 146억9200만원)를 감안할 때 풍족한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정무수석 밑의 정무비서관과 여당 의원이 식사를 하면 비용을 여당 의원이 낼 정도다. 예전처럼 여야 의원의 민원을 해결해줄 힘도 크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조 수석은 당·청 관계, 대(對)국회 관계의 복원이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김영삼 정부의 이원종 전 정무수석은 “조 수석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알리기 위해 당을 어떻게 활용하고 언론을 어떻게 대할지 입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며 “정무수석은 종합적으로 판단해 의견을 제시하고, 필요에 따라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할지 의견을 내놓으면 대통령은 그걸 인식하고 활용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의 최초이자 마지막 정무수석이었던 유인태 새정치연합 의원은 “정무수석은 대통령을 대신해 의회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고 협조가 잘 되도록 ‘소통’하는 게 제일 큰 일”이라며 “조 수석은 국회의원도 했으니 의회하고의 소통 의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유 의원은 “청와대 수석이 어떻게 하는지는 결국 대통령의 의지에 달렸다”며 “대통령이 조 수석에게 좀 미션을 줘야 할 것”이라고 했다.

글=허진·하선영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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