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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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엄숙한 죽음이랄까.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정복한 한국의 산악인 고상돈씨가「알래스카」의 최고봉「매킨리」의등정을 마치고 내려오다 대원 이일교씨와 함께 조난사를 했다.
북극을 도는 구주항로로「앵커리지」에 이르면 기장이「맥킨리」산정이 보인다고 승객들에게 알려준다.
해발 6천1백94m, 만고의 빙설로 덮인「매킨리」산을 「인디언」들이 『가장 위대한 산』이란 뜻으로「디나리」라 불렀다.
이 산정을 정복한 끝에 내려오다 9백m나 되는 빙하의 나낙에 미끄러져 떨어진 것이다.
산악인의 죽음은 모두 엄숙하면서도 허망하기만하다. 「윈파」도 「마터호른」의 등정을 마치『이성이 아무리 강하게 반대를 내세우려해도 이 인간과 산과의 싸움은 시적이며 고상하다….』
이렇게 「고티에」는 산과 싸우는「알피니스트」를 노래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등산가는 아니었다. 따라서 암벽에 매어달리는「알피니스트」의 심리를 제대로 헤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죽은 고상돈씨는 늘『산에서 살다가 산에서 죽겠다』고 말해왔었다고 한다. 그는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에게 있어 산은 하나의 신앙과 같은 것이었다. 모든 훌륭한 산악인이 다 그렇듯이-.
『산에의 길은 인생의 길이다. 인생에의 해답이다….
지상의 고봉에 오른다는 것 그 자체는 큰 뜻이없다. 사람이 거기 오르려 한다는 것, 오르려고 시도한다는 것에 큰 뜻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산이 주는 최대의 교훈은 인간이 참으로 인간이 될 수 있다는데 있다. 자기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에 도달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세이며 자기의 무지와 공포에 대한 싸움이야말로 싸울 보람이 있는 싸움이라는 사실속에 있는 것이다.』이렇게 세계적인 산악인「제임즈·울만」은 말했었다.
과연 중요한 것은 정상이 아니라 정상에 이르기 위한 싸움이다. 승리나 정복이 아니라 등정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스런 산악인들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슬픔이 가셔지지는 않는다.
그가「매킨리」의 정상을정복한 다음에 죽음이라해서 우리의 슬픔이 덜어지지도 않는다.
『등산가는 맹목적인 장해에 항의하는 인간 의지의 상징이라』고 「고티에」는 덧붙여 말하기도했다.
두 산악인의 죽음은 조금도 허망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애써 우리는 애끊는 마음을 달래어 나가야만 할 것이다. 그게 그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우리의 마지막 인사가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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