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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 칼럼]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81호 34면

당신은 TV를 볼 때 아래 방법 중 몇 가지나 사용할 줄 아는가?

①출근길 휴대전화로 보던 드라마를 점심시간에 직장 PC로, 퇴근 후엔 집에서 TV로 계속 이어 보는 N-스크린 서비스

②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통해 다양한 콘텐트를 TV로 불러내 시청하는 OTT(Over the Top) 서비스

③휴대전화를 큰 화면의 TV에 유·무선으로 연결해 사용하는 미러링(Mirroring)

이런 방법을 한 번이라도 써 본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스마트 시청자’라 불릴 만하다. 이처럼 불과 10여 년 전 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TV 보는 것 하나만 해도 이제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 리모컨만 돌리던 시대는 지나가고, ‘연결’과 ‘융합’을 통해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행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시대다. 최근 글로벌 정보통신업체의 선두 주자 구글이 보여준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차세대 사업으로 꼽은 분야가 바로 로봇과 무인 자동차 개발. 최신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연결된 인공지능 시스템이 바로 차세대 핵심 기술이 될 것이란 전망에 기초한 것이다. 이제 로봇이나 컴퓨터 알고리즘은 인간의 창조적 행위에 대한 경계선마저 허물고 있다.

이런 ‘멋진 신세계’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인간사의 모든 문제는 편안하게 해결되는 것일까?

한때를 풍미한 인기 과학소설(SF)이나 영화, 드라마를 살펴보면 그 시대를 관통했던 불안감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제1·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지구촌에선 프랑켄슈타인이나 킹콩으로 대변되던 괴물·괴수의 습격이나 외계인의 침공이 새로운 위기의 근원으로 꼽혔다. 그러다 20세기 후반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가 치열해지면서 악성 바이러스나 좀비의 출현이 인간을 위협하는 인기 소재로 다뤄졌다. 최근엔 이들을 다 제치고 컴퓨터와 인터넷을 장악하는 고성능 수퍼 컴퓨터의 반란을 다룬 영화가 대세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인공지능 시스템 스카이넷,‘매트릭스’의 인간 감시 로봇 센티넬에 이어 아예 인간의 살아 있는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트랜센던스’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맞서는 초고속 컴퓨터가 단골로 등장했다. 그만큼 컴퓨터의 무한한 발전이 역설적으로 인류 문명의 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의 암시라 하겠다.

아직 컴퓨터의 실제 수준이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기초적인 튜링 테스트를 겨우 통과할 정도여서 이 같은 상상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기계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퇴화해가는 인간의 능력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격된다.

“머릿속으로 기억해낼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의 전화번호는 몇 개인가?” “손 글씨로 편지를 써본 게 언제쯤인가?” “좋아하는 글귀 밑에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하루에 얼마 동안이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지 계산해본 적이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답이 가물가물하다면 어느새 당신은 기계의 지배를 걱정할 만한 수준에 들어선 것이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에만 매달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이 울려주는 알람과 일정에 따라 행동하고, 스마트폰 게임이 허락하는 하트의 범위 내에서만 게임을 할 수 있다. 사색이 사라진 공간엔 검색만이 남아 있다.

새삼 “바퀴를 미는 길의 힘이 허벅지에 감긴다”고 했던 자전거 애호가인 소설가 김훈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더없이 그립다.

디지털 변혁이 급격하게 이뤄지면서 ‘디제라티(digerati)’라는 말이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digital)과 지식계급(literati)의 합성어로 정보화 시대의 신지식인 엘리트를 일컫는 말이다. 정보기술(IT)에 대한 풍부한 지식에다 인문학적인 감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까지 갖춰 기계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다시 묻는다. 당신은 디제라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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