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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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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7∼68년의 서독경제는 지금의 우리사정과 비슷했던 것 같다. 50년대에 고속성장을 이룩한 서독경
제는 60년대 중반에 이르러 지친 몸을 쉬고 고장난 곳을 고쳐야할 조정기를 맞았다.
그러나 당시의「키징거」내각은 안정론자인「슈트라우스」재무상과 성장론자인「실러」경제상의
대립과 논쟁으로 실한 진통을 겪어야 했다.
서독의 신재정시대를 열어놓았다곤 하는「슈트라우스」의 이른바「중기재정계획」은 『「헤르쿨
레스」의 위업』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막상 실천단계에서는 그 과감한 세출삭감 내용 때문에 직접
고통을 받는 각 생으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받아야 했다.
당시 재무생 예산국이 세출삭감안을 내라고 했을 때 1개의 생도 이에 응한 곳이 없어「슈트라우
스」재무상이 삭감사정안을 일방적으로 작성, 전격적으로 각료회의에 상정하는「드라머」를 연출
했다.
예산삭감, 특히 사회보장을 위한 지출의 삭감, 소득세·법인세의 증세, 투대세감면을 둘러싼 시비등
잇단 반발과 갈등으로「키징거」연립내각은 여러차례 좌초될 위기를 맞았다.
그런 위기속에서도 건전재정계획이 일관성 있게 강행됨으로써 서독경제는 확고부동한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슈트라우스」재무상은 세출삭감의 기준을 투대적경비냐 아니냐에 두어 소비적인 것이면 그
것이 아무리 정치적 역점사업이라 해도 과감히 잘라내었다. 심지어 자신의 정치기반인「바이에른」
주가 농업지대 임에도 불구하고 농업예산부터 대폭 삭감하여 시범을 보였다.
기극원은 이번 중화학조정의 대상선정기준을 ①장기적으로 대외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업 (
국내생산가격이 수입가격보다 월등히 높은사업) ②시실과잉 또는 중복투자가 되어 부실화될 가능
성이 큰 사업 ③자기자본비율이 낮은 사업에 두고 5백만「달러」이상의 신규사업은 타당성 조사를
철저히 하고 인가 후 아직 착공 안한 사업은 착공을 늦추며 건설중인 사업은 핵과적인 연기방안을
수립한다는 방침을 정해놓고 있다.
중화학조정의 최고의결기관으로 총리를 위원장으로, 재무·상공·동자부장관과 경제과학심의위원
·청와대경제 제1·2수석·총리실항정조정실장을「멤버」로 하는 투자사업조정위를 구성해 놓았다.
그러나 막상 국제경쟁력이나 시설과잉여부는 보기에 따라 상당히 신축성이 있는 것이어서 칼로 두
부 베듯이 산뜻하게 자르기가 힘든 실정이다.
특히 대형중화학공장의 대부분이 기업 스스로의 상업적 판단보다 정부의 독려에 의해 자의반·타
의 반으로 추진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때 중화학공장들은 정부당국으로부터『촌공장을 만들셈이냐, 왜 이리 작으냐, 좀더 규모를 키
워라』는 채찍질을 많이 받았다.
그래놓고 1년이 못 가 과잉시설을 즐여야겠다고 칼을 들이대니 기업들은 갈피를 못잡고 채찍질을
해온 관계당국들도 겸연쩍어하는 것이다.
이미 막대한 돈을 들여 공사를 시작했거나 기계발주를 끝낸 기업들로선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기업의 타격일 뿐만 아니라 귀중한 자원낭비라는 점에서 국민경제면에서도 큰 손실
이다.
중화학조정은 기업의 사활과 관계부처의 실걱에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와 대상기업 또 정부
내의 각 부처끼리도「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미묘한 이견이 점차 표면화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 처음 열린 투자조정위원회의 분위기는 정부안의 난기류를 그대로 반영했다 한다.
안정대책의 주역을 맡은 경제기휙원은 이 조처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중화학투자 조정의 실질적
작업도 기획원의「페이스」대로 끌고 나갈 계획이었다.
따라서 3월 31일 청와대에서 안정대책의 골격이 굳어지자 기획원은 강경직 기획차관보를 중심으로
투자조정대장에 대한 전면적인 심사작업에 착수, 4월16일 대책이 발표됐을때는 이미 1차검토를 끝
내고 있었다.
기획원은 강차관보를 위원장으로 하는 보무위안까지를 미리 마련했다.
그러나 4월30일 첫 투대조정위에서 이같은 기획원의 의도는 최각규상공부장관에 의해 강력한 견제를
받았다.
안정대책을 손질할 때 미국방문으로 자리를 비웠던 최장관은 그동안 토로하지 못했던 의견을 이날
한꺼번에 털어놓고 『중화학투대조정은 상공부가 이미 추진하고 있었던 것인 만큼 상공부가 안을
만들어 제시하겠다』고 강력히 주장했다는 것.
일부 관측통들은 이날 회의로 중화학투자조정작업이 기획원에서 상공부로 주도권이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경제기획원의 생각은 다르다. 무엇보다 중화학을 추진해온 상공부에 중화학을 자르는 칼자
루를 맡겨 놓았자 별 실효가 없으리라는 것.
그래서 금흥기외자관리국장 밑에 윤수길(관리 1과장) 이강우(투자 2과장) 강봉균(상공예산담당관)
권문용(투자심사 1과장) 장병조(경협 3과장) 등 과장급으로 구성된 중화학투자조정 보무반을 만들
어 놓고 번사채비를 갖추고 있다.
말하자면 상공부에서 들고 오는 조정안이 부실한 경우 직접 손질을 하겠다는 대세다.
이런 분위기인 만큼 앞으로 투대조정 작업은 관계부처간에 적지 않은 갈등과 마찰을 빚을 소지를
안고 있다.
여기에다 조정대상이 되는「프로젝트」는 대부분 국내 유삭의 대기업들이 추진주체가 돼 있어 재
계의 막후 입김이 거셀 것이 확실하며 정부 안에도 상공부외에 중화학추진에 관계가 깊은 실력자
들이 도사리고 있으면서 사태의 추이를 달갑지 않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한다.
이같은 역학적인 어려움의 실제 심사를 어떻게 하느냐, 조정대상으로 낙인찍힌 사업의 사후처리는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도 난제로서 남는다.
강차관보는 대상업체의 심사가 공개리에 진행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과거 부실기업정리 때처럼 정부가 은밀히 작업을 진행해서 일방적으로 결말을 내지 않고 재계(
관계회사)·학계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국가이익』에 가장 합당한 결론』에 따라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 경우『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은 일치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업에 무리한 손실을
강요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사후조치도 이 같은 과정에서 자연히 비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같은 자세가 논리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이대로 해서 효율적인 조정작업이 이
루어 질 것인지는 미지수다.
조정대상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기업들은 벌써 확보해 놓은 종업원의 이탈, 자금조달의 어려움 등
으로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 그래서 전「안테나」를 동원하여 정책방향을 탐색하고 굵직한 기업
주들이 직접 읍소작전에 나서기도 한다. 정리대상에 올라있는 기업들은 거의 일손을 놓고있는 실정
이다
어차피 해야할 수술이라면 하루 속히 집도를 하는 것이 자비로운 처사가 될지도 모튼다고.

<신성순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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