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5)|<제63화> 민주당 시대 (35)|신파의 집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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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도연씨의 인준이 부결된 후구파 참모들은 즉각 대책 회의를 열었다. 탄식하고 있을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간단한 패인 분석이 있었다. 특별히 누가 배신을 했는지 당장 밝힐 수는 없었지만 누군가 구파 안에서 부표를 던진 사람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그걸 밝히고 앉았을 시간이 없었다. 구파 자체의 단속, 가표수 유지, 무소속 표 재확인 등 제2차 김씨 지명을 대비하여 흩어졌다. 그렇지만 솔직이 말해 구파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나중에 가서야 밝혀진 일인데 구파 안에서 정헌주 박찬혁 유진령 의원이 신파 쪽으로 넘어간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이들은 2차 장면씨 지명 때 가표를 던짐으로써 신파 집권에 역사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전남에서만 구파에서 5명이 넘어갔다. 그런데 정씨는 구파의 경남 총책이었다는데서 사람들이 더욱 놀랐다.
신파가 항상 철저하고 현실적이고 집요한 반면 구파가 인연과 의리만을 강조하다 당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무소속에서 신파에 가세한 이재형 박제환 윤재근 의원 문제만 해도 그렇다.
구파에서는 김포 출신인 상산 김도연 박사와 세 의원이 같은 경기도 출신이라는 것만을 믿고 낙관하고 있었지만 신파에 뺏기고 말았다.
하루는 김씨의 운동 본부인 삼화 「빌딩」으로 몇몇 재벌이 찾아간 일이 있다. 돈이 필요하면 써야한다는 다소 현실론자였던 김산씨가 적당히 이들 재벌의 돈을 받아두도록 권했으나 상산한테는 통하지 않는 일이었다. 『4·19학생들의 피가 아직 마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런 정치를 해서야되겠느냐』는게 상산의 태도였다.
또 하나의 패인이 있었다면 구파의 소장 지략가였던 강영훈 의원의 갑작스런 별세를 들 수 있다. 강 의원이 살아있었던들 신파로 넘어간 소장파 3, 4표는 더 보탰을 텐데 그는 김씨 운동을 한창 하다 아깝게 가고 말았다.
구체적인 증거를 대라면 곤란한 일이지만 김 박사의 미국과의 관계가 장 박사의 그것처럼 돼있지 않은 것도 패인으로 작용했으리라는 추측들이 구파안엔 많았다.
김 박사는 미국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고 왔지만 민족주의 사상이 강했던 분이었다.
이기고 지는 것에 관계없이 윤보선씨나 김도연씨나 다같이 항일 독립 운동의 관록을 갖고있다는데서 무조건 추대하는 형식이었다.
김씨는 유명한 동경 유학생 2·28선언의 주동자였고 윤씨는 18세 때 상해임시정부에 가담, 몰래 국내에 잠입하여 집에서 그때 돈 6천원을 독립 자금으로 보탠 일이 있다.
윤 대통령은 사전에 어떤 약속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김씨를 다시 지명하지 않고 장면 박사를 택했다.
19일 인준 투표 결과 장씨가 1백17표로 과반수에서 4표를 더 얻어 국무총리가 되고 실질적인 정권을 잡게됐다. 부표는 1백7표로 오히려 구파 동조가 줄어들었다.
장씨 인준 때 국회의원에 당선되지 못한 김두한씨가 방청석에서 「전단」을 뿌리며 신파를 비난하다가 경위들에게 쫓겨난 일이 있다.
장 박사가 인준되는 순간 환호성을 내지르는 신파 의석과 말없이 멍하니 의석에 앉아있던 구파 의원들의 모습은 실로 커다란 대조를 이뤘다.
구파는 즉각 23인위를 소집. 건전 야당으로 발족할 것을 결의했고 20일 동원 예식장에서 구파의원 총회를 소집했다.
의원 총회에서는 장면씨의 신파 내각에 구파가 일체 참여하지 않는다고 결의했다.
나와 몇몇 사람은 차제에 신파로 갈 사람이나 장관 자리에 들어갈 사람은 마음대로 가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신파 정권의 원내 안정 세력 확보를 위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서로 이질적인 사람들과 한당에 묶여 얼마나 많이 싸워야 했던가. 비록 구파가 정권을 장악치는 못했다 하더라도 이제 신파와 갈라서서 서로의 특색과 전통을 살려 보수 양당 정치의 멋을 살리게 됐다 생각하니 울적했던 마음이 삽시간에 밝아오는 듯했다.
장면 총리는 인준되자마자 조각 원칙을 천명했다. 민주당의 정강 정책에 동조하는 인사로서 공동책임을 질 수 있는 당내·외 인사가 입각 교섭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구파 쪽에도 입각을 종용하는 한편 무소속에 약속한 법무국방장관과 정무 차관 1석을 이행한다고 밝혔다.
장 총리의 조각 본부는 반도 「호텔」 828호실. 오위영씨를 비롯하여 이상철 최희송 현석호 한통숙 조재천 주요한씨 등이 처음 조각 본부의 참모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
벌써부터 이철승씨를 중심으로 한 신파 소장들은 조각 본부에 틀어박힌 참모들이 대부분 노장일색이라는데 불만이었다.
구파의 입각 대상으로는 나용균 조한백 민관식 의원, 이미 신파와 행동을 같이 해온 정헌주 의원 등이 물망에 올랐다.
신파에서는 현석호 조재천 김영선 홍익표 주요한 정일형 한통숙 이태용 이석기씨 등 평소 신파 참모들이 대거 입각할 것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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