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피콩, 소뿔가지, 멀꿀 … 우리것 살려야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이영문씨가 껍질이 호랑이 무늬를 띤 호피콩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껍질이 호랑이 무늬를 띤 호피콩, 소뿔 모양의 가지, 열매맛이 꿀 같은 멀꿀, 잡초가 아닌 식용 올방개, 열매를 따 먹는 목련나무….

 우리 산야에서 자라다가 지금은 거의 사라진 토종식물과 나무들이다. 경남 하동에서 농사 짓는 이영문(61)씨가 이런 토종을 모아 ‘추억의 토종 전시회’를 26~30일 사천시 곤명면 태평농업 야외 전시관에서 연다.

그가 평생 전국에 다니며 모은 종자를 발아시켜 복원한 300여 점이다. 농촌 어르신들의 기억에는 남아 있거나 문헌에는 나오지만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종자는 우리 교포들이 많이 사는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이나 러시아 사할린까지 가서 구해왔다.

 10여 년 전 경북 영천의 농촌에서 구한 호피콩은 덩쿨형으로 생명력이 강하고 수확량도 많다. 소뿔가지 외에도 자색이 아닌 녹색을 띤 가지 등 10여 종도 찾아냈다. 현재 농촌에서 잡초로만 알고 제초제만 뿌려 대는 올방개도 오래전에는 식용이 있었다. 그는 뿌리를 말린 가루로 묵을 만들 수 있는 식용 올방개 종자를 찾아냈다.

 식용 열매가 열리는 목련나무도 찾아냈다. 목련은 봄에 꽃만 감상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옛날에는 열매를 따 먹는 목련이 있었다.

 그는 토종 개암나무가 토종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인식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조상들은 토종 개암 열매로 죽을 해먹으며 위장병을 이겨냈다. 그러나 요즘 세태는 토종 개암은 모르면서 서양 개암인 ‘헤이즐넛’을 특별한 열매로 알고 사먹고 있다.

 그가 토종종자 보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이다. 유기농 벼농사를 짓던 그는 농기계가 없고 농약·비료·제초제까지 사용하지 않던 옛날에 우리 조상이 하던 전통농사법을 연구하다 토종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고 한다. 그렇게 찾아낸 전통농법을 ‘태평농법’이라 이름 짓고 전국에 보급하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우리 기후환경에 잘 적응한 토종은 잘 자라고 우리 몸에도 좋지만 그 가치를 몰라주니 어느새 사라졌다. 토종을 지키는 길만이 앞으로 닥칠 외국계 종자회사들의 횡포에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했다. 힘들게 찾아낸 토종을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을 세우는 게 그의 꿈이다. 
글·사진=김상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