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어린이 병엔「사랑」이 묘약"|헬싱키 대학 부속 아동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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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헬싱키=윤호미 특파원】『주사 맞는 것은 싫지만 엄마랑 함께 있어서 재미있어요.』- 지난가을 국민학교에 들어갔다가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막스·카루」군(7)은 병원생활 5개월 째,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머니가 푸른「가운」을 입고 곁에 있고 간호원들과 의사들이 만들어 주는 온갖 장난감들 때문에『오히려 집보다 재미있다』고 말한다.

<하루 2천7백원>
하루 평균 1천 여명의 어린이환자가 드나드는「핀란드」의「헬싱키」대학부속 아동병원은 「북구 복지사회의 상징」으로서 마치 어린이를 위한 종합 놀이터 같은 인상이다.
입구에서부터 모든 벽과 문·병실 안이 온통 밝은 색깔의 꽃·새·나무들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고 방마다 인형과 장난감들이 줄을 서 있다.
이 병원 간호원인「타루·비허하이모」씨는『어린이가 괴로움을 잊을 만큼 분위기를 재미있게 꾸미는데 가장 큰 노력을 한다』고 말했다.
l946년에 세워진「헬싱키」아동병원은 입원실 2백84개, 62명의 전문의사들과 6백 여명의 직원으로 1년에 80만 명의 외래환자와 8천명의 입원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어린이의 하루입원비는 보통 5백50「마르카」(약 6만9천 원)가 드는데 모든「핀란드」어린이는 똑같이 하루21「마르카」(약 2천6백원)만 내면 된다. 그 나머지는 모두가 국가에서 부담한다.『홍역이나 천연두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오늘날 어린이들에겐 새로운 병이 많이 생겼어요.』이 병원 원장「니로·헐만」박사는 어린이들에게 요즘 정신병과 신생아 병이 두드러지게 증가했다고 걱정한다.
신생아 병은 기형아나 선천성심장병·호흡기질환, 그리고 조산이 대부분. 교통사고는 물론, 어린이 혼자 놀다가 당하는 사고도 자꾸 늘어난다.
『어린이들의 병은 무엇보다 사랑의 결핍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통계숫자보다는 그 깊이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62세의「헐만」박사는「오늘의 사회」에 문제를 던진다. 왜 어린이까지 정신병을 얻는가.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병을 지니게 되는가-. 많은 의사들이「사랑의 결핍」을 첫손에 꼽는다.
세계에서 가장 여권이 앞선 나라중의 하나로 꼽히는「핀란드」는 전 경제활동 인구의 45·1%가 여성. 특히 기혼여성의 70∼80%가 직업을 갖고 있어 도시에서는 대부분이 맞벌이 부부다. 따라서 이런 환경에서 어린이들이 외롭게 자라기 때문에 병을 얻고, 또 신생아 병도 임신중의 여성들이 불건강한 환경에서 지낼 경우 많이 발생한다고 의사들은 믿고 있다.

<"국가에 보상의무">
「핀란드」사회복지위원회의 가정복지문제 담당「리사넨」국장은『어린이보호는 가정에서 한 걸음 나아가 사회와 국가가 공동으로 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노력은 이미 선진국, 특히 북구의 여러 나라에서 시작되었다.「모자보건」「어린이복지」라는 말이 19세기말부터 국가정책으로 쓰여졌고 이「헬싱키」아동병원도 국가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위해 국가는 법으로 어린이를 키울 시간을 할당한다. 아기를 낳은 어머니는 9개월간 유급휴가를 받고 특히 출산 2년간 휴직을 허용, 어머니가 젖먹이 아기를 충분히 돌본 뒤에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법적으로 보장해 준다.「헐만」박사는 이런 제도가 더욱 많은 여성들이 직장에 나가게 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모학교도 운영>
신생아 병을 비롯한 모든 어린이 병이 이미 임신전부터 부모의 태도가 큰 역할을 한다는 뜻에서「핀란드」어린이 복지협회는「부모학교」라는「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임신을 하게 되면 그 부부를 데려와 부모로서의 자질을 교육하는데 현재 전국에 5백 개의 「클럽」이 있어 부모들이 아기를 어떻게 건전하게 키우는가를 배우고 서로 의견을 교환한다.
『아무리 국가 사회에서 경제적 제도적 뒷받침을 한다 해도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랑의 손길』이라는 취지에서「헐만」박사는 병원을 부모들에게 공개했다.
그리하여 부모가 위생「가운」을 입고 병실에서 간호원처럼 함께 지낸다.
『사랑만이 병을 고칠 수 있다.』어린이 환자들은 잠시 이 병원에 머물러 사랑을 듬뿍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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