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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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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동기문』에 있는 실화다. 좌의정인 정홍순은 딸의 출가를 앞두고 부인에게 혼수감을 마련하는데 얼마나 들겠느냐고 물었다.
『한 8백냥은 있어야겠읍니다』『잔치에는 얼마나 들겠소?』『4백냥쯤 들겠읍니다.』『내 알아서 마련하겠으니 염려마시오.』
혼인날이 다가왔다. 그러나 혼수감은 아무데서도 오지 않았다. 부인의 성화를 받자 대감은 『아마 상인들이 깜박 잊어버린 모양이니 이젠 별도리가 없다. 헌 옷이라도 잘 빨아서 입혀 보내라』고 일렀다.
드디어 잔치날이 되었다. 그러나 고기한점 들어오지 않았다. 술을 날라오는 상인도 없었다.
『음식들을 다 맞춰놨는데 이 또한 상인들이 잊은 모양이구료. 이제와서 소인배와 싸울수드 없으니 집에 있는 음식으로 잔치를 치르는 수 밖에 없구료.』
정홍정은 재상답지도않게 지독한 구두쇠였다. 사위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사위가 놀러왔다. 저넉이 되자 장인이 이르기를I『자네는 집에 들아가서 저녁을 먹게. 자네 집엔 자네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을텐데. 그걸 안먹고 버리게할 수는 없을 것 아닌가]
사위는 장인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후 발을 뚝 끊고 말았다. 예부터 우리나라엔 구두쇠에 관한 실화도 많지만 소화도 많다. 그 모두가 구두쇠를 비웃는 쪽에 가깝다.
흔히 수원구두쇠가 아니면 개성구두쇠가 등장한다. 물론 낭비성향이 짙은 서울사람들이 만들어낸 소화들이다.
이조말 특히 수원과 개성에는 알부자가 많았다고 한다. 그들은 서울의 부자들처럼 사치스럽지 않고 알뜰했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비웃음 속에는 다분히 부러움이 섞여있었다고 봐야 옳다.
정홍정의 얘기에는 「에필로그」가 붙어 있다. 사위와 장인사이에 완전히 왕래가 끊긴 채 몇 해가 지났다.
어느날 정홍순은 사위와 딸을 불러 어느 새집 앞에 데리고 가서 말했다.
『너희들 혼례때 혼수감과 잔치비용으로 날릴뻔 했던 1천2백냥을 그동안 늘려서 산게 이집과 저 논밭이니 이만하면 평생을 편히 살만할 것이다.』
노랑이와 구두쇠와는 전혀 다르다. 노랑이는 단순한 수전노다. 그 전형적인 인물이 『크리스마스·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다. 구두쇠는 불필요한 낭비를 일체 삼가고 사치나 허비·허식을 거부할 따름이다.
정홍정은 노랑이가 아니었다. 그래도 얼마나 부인과 딸의 원망을 받아왔었을까 짐작할만도 하다.
예부터 구두쇠의 가는 길은 험준했다. 그래도 뒤끝은 매우 밝다. 장인이 사준 새집에 들면서 그사위는 쥐구멍이라도 찾을 심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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