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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워싱턴의 '전쟁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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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워싱턴은 두 개의 얼굴이다. TV 화면은 이라크전쟁으로 넘쳐난다. 거리는 화사함이 가득하다. 이곳의 명물인 벚꽃이 한창이다. 지난주말 중심가에선 벚꽃 축제 퍼레이드와 함께 시민들은 봄을 즐겼다. 공습.포연.진격.죽음.피란으로 이어지는 TV와는 딴판이다.

백악관은 전시의 심장부다. 시위 때면 험악한 눈초리로 행인을 살피는 경찰의 모습에 익숙한 한국인에겐 백악관 경계는 한가롭다. 백악관 앞은 좁은 4차로 길을 차단했을 뿐 그 앞 인도에는 기념 촬영하는 사람들이 몰려 있다.

그 속에 있던 내게 흥미있는 장면이 다가왔다. 중년의 프랑스 관광객이 함께 온 미국인에게 "우리도 미국이 빨리 이기길 바란다. 그게 시라크(프랑스 대통령)의 진심"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미국인은 "시라크의 줄타기다. 프리덤(자유)토스트로 바뀐 식당 메뉴를 프렌치 토스트로 다시 불러주겠다"며 웃음으로 응수했다.

전선의 긴박감과 후방의 평온-. 승자와 패자쪽 민간인 삶의 차이는 냉혹하다. 워싱턴의 활기는 후세인 정권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자신감의 반영인가,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 덕분인가, 미국적 애국심의 발로인가.

동행한 미 의회 조사국 연구원은 이렇게 말한다. "전쟁의 낙관론이 퍼져 있다. 정밀폭탄 덕에 사상자가 적은 것도 반전 여론을 약화시켰다. 국론이 상당 부분 한쪽으로 쏠려 있다. "

미국적 가치.이념.생활 방식을 침해하는 적에 대해선 미국인은 뭉친다. 그런 전통적 애국심에다 선과 악으로 나눠놓은 명분은 전쟁 수행역량을 높였다.

개전 이래 여론조사에서 전쟁 지지율이 70% 아래인 적이 별로 없다. 대량살상무기 제거에다 후세인과 주민을 분리하는 이라크 해방론에 대부분 미국인들은 호응한다.

이라크전은 전략 개념을 바꿔놓았다. 공격 초점을 전선의 군사력보다 전쟁 지휘부에 맞춘 새 전략이 성공하고 있다.

8일까지 미군 사망자는 94명, 부상자 1백55명. 참전자(30만명 규모) 1천2백여명당 한명꼴로 죽거나 다쳤다. 30여년 전 베트남전보다 엄청나게 줄었다. 베트남전의 사상자는 참전 16명당 한명꼴이었다(사망 5만8천여명, 부상 15만여명).

그 연구원과 함께 들른 링컨기념관 주변은 진지하다. 거기서 만난 40대 관광객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링컨의 남북전쟁은 내전이다. 그렇지만 전쟁 결의는 이라크전과 다를 바 없다는 게 나처럼 평범한 미국인의 대체적 생각이다. "

링컨은 평화를 위해 전쟁을 결행했다. 연방의 분열을 막는 게 최선의 평화라고 믿었다. 반전과 타협의 압박이 있었지만 비굴한 평화라며 거부했다.

남군의 항복만이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신념에서였다. 전쟁으로 이라크 민간인들의 희생과 고통이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후세인 독재 아래 민간인이 겪는 고문.탄압.굶주림을 몰아내고 진짜 평화를 얻자는 게 이라크 해방론이다.

평화는 신념과 전략의 산물이다. 북핵 위기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풀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전 파병 이유로 든 것은 북핵 문제에서 발언권 확대다.

부시 대통령에게 꿔준 만큼 빚을 받겠다는 계산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오판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 반전과 평화의 외침만으론 평화는 얻을 수 없다. 우리의 국론 분열, 리더십 혼선은 핵무기를 갖겠다는 북한의 야심과 오판을 키운다.

평화는 최악의 경우 전쟁을 결심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盧대통령은 '링컨 닮기'를 통해 미국을 알려고 했다. 링컨이 설정한 평화와 전쟁의 함수관계를 그는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박보균 논설위원 [워싱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