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470)-(63편)민주당 시대(정성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중앙위에서 조병옥 박사를 대표최고 위원으로 뽑아 당 수습을 일단 마치자 곧 바로「8·13」지방선거가 닥쳤다.
초장부터 민주당 후보들에게는 등록을 받아주지 않는 사건이 여기 저기서 생겨 정국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특히 경남·북 지방에서 심했다. 심지어 어떤 데서는 민주당원들이「테러」까지 당하는 사태가 생겼다.
당 지도부에서는 대책에 부심한 끝에「집단등록」이라는 비상방안을 시도해 봤다.
거제출신 김영삼 의원이 현지조사를 다녀와 건의한 방안이었다. 당은 이 방안을 채택하고 김 의원을 부산에 다시 급파했다.
김 의원의 묘안은 이런 것이었다.「버스」를 빌어 당원들이 대거 타고 다니면서 각 지역의 선관위 사무실에 다같이 들어가 다수의 위력으로 등록을 거절할 수 없게 하는 작전. 그러나 부산에서조차 겨우 2군대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익흥 내무장관을 국회에 불러 추궁했으나『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시종일관했다.
등록시한을 연장하자는 야당의 임시 조치법안도 중과부적으로 내밀기가 무섭게 부결되고 말았다.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들은 장기투쟁이 불가피하다는 판단 아래 공동투쟁조직으로「국민주권 옹호 투쟁위원원」를 만들었다.
윤제술 민관식(헌정 동지회) 소선규 유진산 현석호(민주당) 강승구 백남식 (무소속)의원 등이 주동이 됐고 뒤에 장택상 이인(무소속) 조병옥(민) 변진갑(헌동)의원 등 지도급들이 참여하여 60여명으로 불어났다. 위원장에는 장택상씨를, 간사에는 심일동(무) 이석기(민) 조재오(민) 민관식(무) 의원을 뽑았다.
말로 해서는 씨가 먹히지 않았다. 그래서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는데 누구도 반대가 없었다. 7월27일 하오 임시조치법안 부결직후「투위」의원들이 태평로 의사당 앞에 모여들었다. 장 위원장의 선언문 낭독에 이어 조병옥 대표가『선거의 자유를 사수하기 위해 투쟁하자』며 단장을 짚고 앞장 서 거리로 나섰다. 우리 나라 헌정사상 최초의 국회의원「데모」로 이것이 유명한 7·27「데모」사건이다.
눈치를 보거나 꽁무니를 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경찰은 우리를 벌써 완전히 포위하고 이익흥 장관·김종원 치안국장이 현장 진두 지휘했다.
의원「데모」행렬은 시청광장을 지나 미 대사관 앞을 거쳐 전진했다.
나는 선두에 선 조 박사를 경호하면서 길을 헤쳐나갔다. 조 박사가 선두를 헤쳐나가지 못하면「데모」가 계속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조 박사에게 몰려드는 형사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김두한(무) 이철승(민) 의원은 전위에서 길을 뚫느라 맹활약을 했다.
이「데모」때 김선태 의원(민)이 연행됐다. 이 장관의 직접 지휘로 김종원이 잡아간 것이다.
김 의원은 당대에 유명한 독설가로 별명도「따발총」이었다. 그래서 특히 미움을 받다가 마침 잘 됐다 하고 걸려든 모양이었다.
이튿날 국회는 이 장관 성토와 김 의원 석방문제로 들끓었다. 이인 의원(무)같은 이는 일제 때 고등 경찰을 한 장관이 김선태 의원을 무슨 죄로 체포했느냐고 전력까지 들추며 공격했다.
그날 하오 6시께 야당이 낸 김 의원 석방 결의안이 재석 1백72명 중 1백2명의 가표로 통과됐으나 당국은 김 의원의 용공통비한 여죄가 드러났다며 석방을 질질 끌었다.
김 의원이 구속되고 국회가 이 문제로 시끄러울 때 서울시내에는 애국 의열단이다, 의혈청년단이다 하는 유령단체들이 곳곳에 벽보를 붙였다.
『김선태는 지리산 공비 최인예와 내통하여 그녀를 애첩으로 삼고 보호한 빨갱이 앞잡이다』『사직당국은 망국도배 김선태를 총살하라』는 등이 그 내용.
30일에도 김준연 윤형남 유진산 유옥우 의원 등이 정부 공격을 퍼부었다..
특히 유 의원은 장장 3시간 발언의 기록을 수립했다. 이 장관이 경기도 지사로 있을 때 하루는 광나루에 낚시질 나간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는걸 보고『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고 할 정도로 아첨에도 비상하다고 유 의원이 말해 한때 이 말이 유행어가 됐다.
김 의원은 8월1일 밤11시께 석방됐다.
용공통비 혐의에 대해 김 의원은 법정에서 고향인 완도에서 최홍녀라는 여교사가 6·25때 부역협의로 나중 검거됐다가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이 여자를 공비라고 하는 모양이라고 해명했다.
그 여자가 취직부탁을 위해 열흘 전 자기에게 다녀간 것을 덮어 씌우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선거는 서울을 제외하고는 자유당의 일방적 승리(?)였다. 서울에서는 자유당시 의원이 1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정읍에서 지금 신민당에 있는 은종숙씨(무·도의원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환표사건은 이때 일어난 일이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