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총격 뒤 생활관 달려가 또 … 아무도 제지 못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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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동부전선 22사단 최전방 일반전초(GOP)에서 발생한 총기난사와 탈영사건은 군 관리체계의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인재(人災)형’ 참사였다. 북한군과 맞닿아 있어 24시간 긴장을 유지하는 곳에서 동료들에게 총격을 가해 사망·부상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군은 사건 발생 18시간이 지난 22일 오후에야 총기를 난사한 임모(22) 병장을 찾아 교전을 벌였지만 사고 과정을 들여다보면 여러 측면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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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또 한 명의 총격에 속수무책=임 병장은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12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런데도 도주할 때까지 전혀 제지가 없었다. 임 병장은 21일 오후 2시부터 7시55분까지 철책에서 주간 경계근무를 했다. 오후 8시15분쯤 동료들과 복귀한 임 병장은 무기를 반납하지 않은 채 동료들에게 총부리를 겨뤘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22일 “임 병장이 함께 근무에 나섰던 다른 병사들과 만나 복귀를 해야 하는데, 근무자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총격을 가한 뒤 피신하는 병사들에게 총격을 가했다”며 “뒤이어 30~40m 떨어진 생활관(내무반)으로 뛰어가 생활관 복도에서 마주친 병사들에게도 사격을 가한 뒤 도망쳤다”고 설명했다. 육군 관계자는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던 데다 부상자들을 챙기고 상부에 보고하느라 임 병장을 놓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전방 지역에서 동료들을 상대로 총기를 난사한 사건은 2005년 5월 이후 처음이다. 9년 전 경기도 연천군 육군 모 부대 김모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 한 발을 투척하고 소총을 난사해 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그때와 똑같이 이번에도 사병 한 명의 총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건이 재연된 것이다. 2011년 7월 강화도에서 발생한 해병대 사병 총기난사사건의 경우 부사관이 총격을 제지하다 총상을 입어 사망했고, 뒤이어 이등병이 가해자를 제압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으나 이번엔 초동 제압에 실패했다.

 ②그물 뚫린 검문망=육군은 사건 발생 직후 강원도 지역에 비상경계령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뒤 인근 부대원들을 동원했다. 총격 10여 분 만에 사단과 군단 등 상부에 보고를 함과 동시에 인근 병력 전원을 투입해 경계활동과 도주로를 차단했다. 하지만 임 병장을 발견한 건 사건 발생 다음 날인 22일 오후 2시17분이었다. 그가 발견된 곳은 사건현장에서 10여㎞ 떨어진 곳이었다. 18여 시간 동안 ‘그물망 검문’을 피해 도주한 것이다.

 ③허술한 탄약 관리=GOP는 언제라도 북한군과의 교전이 이뤄질 수 있는 곳이다. 근무에 나서는 장병들은 실탄과 수류탄을 휴대한다. 오발이나 자살 등 총기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그런 만큼 군은 총기와 실탄 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군 관계자는 “주야간 가릴 것 없이 근무에 나서는 병사들은 근무 전후 탄약 분배와 회수를 철저히 진행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은 총기와 탄약을 반납하기 직전에 이뤄져 임 병장이 다량의 실탄을 보유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임 병장이 21일 근무 시 갖고 나간 총알은 70여 발이지만 실제 도주 땐 10여 발을 소진해 60여 발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탄약 반납 등의 절차 관리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④전역 앞둔 병장이 왜?=지난해 말 GOP 근무에 투입된 임 병장은 9월 16일 전역을 앞두고 있다. 2개월여만 있으면 GOP 근무와 군생활을 끝내는 상황에서 이번 총기사건을 일으킨 배경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육군 관계자는 “군내에서 주요 사고는 이병이나 일병 등 군대에 입대한 직후 적응에 실패해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신병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며 “근무 강도가 높은 GOP 근무를 시작한 지도 6개월이 지났고 전역을 앞둔 그가 사고를 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워 그 부분을 정밀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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