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역사 선생님'이 담화 검증 핵심 위원 결론 정하고 시작한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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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타 이쿠히코

‘고노담화 검증’에 나섰던 일본의 민간 위원은 총 5명이었다. 좌장인 다다키 게이이치(但木敬一) 변호사(전 검찰총장)를 비롯해 교수 2명(법대·국제관계학), 언론인 1명, 그리고 역사학자 1명이었다. 이들은 준비모임을 포함해 총 다섯 차례의 회동을 하고 문안을 조정했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바로 역사학자인 하타 이쿠히코(秦郁彦·81·전 니혼대 교수)다. 그는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인하는 일본 내 우익 이론가의 거두다. 그가 쓴 ‘위안부와 전장(戰場)의 성(性)’은 아베 총리 등 일본 내 ‘고노담화 부정론자’의 바이블이 돼 있다. 정치 초년병 때부터 위안부 문제에 ‘꽂혀 있던’ 아베의 ‘역사 선생님’이기도 하다.

 일 언론계의 한 인사는 “아베 정권이 하타와 같은 사람을 검증위원회에 넣었다는 건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검증작업에 나섰다는 걸 의미한다”며 “검증위원회 자체가 위안부 문제에 정통한 하타의 논리에 휘둘렸을 게 뻔하다”고 말했다.

 하타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의 월급이 10엔 전후였는데 위안부는 300엔 정도라 응모자도 많아 강제 연행할 필요도 없었다”며 “이런 고수입자를 성노예라고 부르는 건 있을 수 없으며 (일본에) 실례이며 모욕”이라고 주장한다. 난징(南京)대학살 희생자 수도 30만 명(중국 주장)이 아니라 “기껏해야 4만 명 정도”라고 했다.

  2007년 3월 아베의 “(위안부 모집에 있어) 협의의 강제성은 없었다”는 발언 이후 미국 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려 하자 산케이신문에 ‘결의안 저지를 위한 묘안’이란 칼럼을 쓰며 아베에게 ‘한 수’ 지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당시 그는 “고노담화 중 ‘위안부 모집은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에서 ‘군의 요청’을 삭제하는 등 전면적인 수정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증 보고서’에 두 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고노담화 발표 전) 일련의 조사를 통해 얻은 인식은 이른바 강제연행은 확인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는 문장은 그의 저서와 정확히 일치한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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