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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중독자와 색정광의 차이는 …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80호 24면

전 세계 35명의 거장 감독들이 각각 3분 여의 짧은 단편작업으로 참여해 만들어진 옴니버스 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에서 라스 폰 트리에만큼 강렬하고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인 이도 없다. 극장 객석에 턱시도 차림의 두 남자가 앉아 있다. 이제 막 영화가 끝난 참이다. 그중 한 명이 붙임성 있게 지금 본 영화에 대한 자신의 촌평을 상대에게 지껄이기 시작한다. 무심한 듯 남자의 이야기를 듣던 또 다른 남자가 그에게 실례지만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 그가 자신을 영화평론가라고 하자 상대방 남자가 객석 밑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들더니 조용히 일어선다. 그의 손에는 손도끼가 들려 있다. 남자는 영화평론가의 머리를 계속 내리찍는다. 주위는 곧 피범벅으로 변한다.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1’

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 ‘님포매니악 볼륨1’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마치 세상을 향해 손도끼질을 해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내 영화 내가 마음대로 할 테니 그 누구도 찍소리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그만큼 장장 5시간에 가까운 이번 영화 ‘님포매니악 볼륨 1,2’는 자유분방함의 극치를 보여 주며, 세상의 금기 따위는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 영화가 과연 성적 표현의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경계의 끝을 실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님포매니악’은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다. 그런데 차라리 포르노그래피가 낫다는 생각까지 갖게 한다. 리얼한 스토리를 지닌 포르노라고 생각해 보라. 그것만큼 강렬하고 처절한 느낌도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의 주인공 조(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스스로를 색정광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색정증과 섹스중독증을 구별하는데 후자가 섹스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상태를 부끄러워하고 고치려 하는 증상이라면 색정광은 그것을 자기애(自己愛)로 받아들이는 경우다. 조는 섹스중독을 치료하는 모임에 가서 이렇게 일갈한다. “난 당신들과 달라. 난 색정증 환자야. 그런 내 자신을 사랑해. 무엇보다 난 내 XX를 사랑하고 내 추잡한 욕정을 사랑해.”

이야기의 시작은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누군 가(들)에게 심하게 폭행당한 채 뒷골목에 버려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녀를 구한 것은 자칭 여전히 동정남(童貞男)이라는 초로의 남자 셀리그먼(스텔란 스카스카드)이다. 그는 꽤나 고담준론을 좋아하는 철학적 인물인데 조는 그런 그에게 자신이 지금껏 경험한 수많은 남자와의 섹스담을 이야기해 준다. ‘님포매니악 볼륨1’은 조의 어린 시절과 20대의 시절을 담고 있는 젊은 조(스테이시 마틴)의 이야기다.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님포매니악 볼륨1’은 물론이고 7월 초에 개봉될 ‘님포매니악 볼륨2’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섹스의 행위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각종 남자의 성기가 까발겨지듯 이곳저곳에서 보여지는 것은 나중에는 차라리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영화에서는 중간중간, 아니 시종일관 진짜 성행위가 진행된다. 이를 위해 할리우드와 유럽의 유명 배우들, 곧 샤를로트 갱스부르와 샤이어 라보프, 윌렘 대포와 제이미 벨 등등이 진짜로 섹스를 한 셈이다. 특히 이번 작품이 첫 영화 출연인 신인배우 스테이시 마틴의 적나라함을 넘어선 과감한 ‘실제’ 연기가 눈길을 모은다. 그녀는 온몸으로 자신이 색정광임을 보여주려 애쓴다.

색정증은 결국 ‘느끼지 못하는’ 증상이다. 오르가슴은커녕 점점 더 무감각해지기 때문에 남자 혹은 여자, 그러니까 상대를 계속해서 바꾸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꼭 그렇게 된다. 색정광처럼 돼 간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스크린 속에서 이런저런 섹스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들, 점점 더 무감각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결코 포르노와 다른 지점에 서 있다. 자극과 흥분의 반대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어쩌면 단 두 가지의 범주로만 운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섹스와 폭력이다. 거기에 종교와 정치 등등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개입돼 있는 셈이다. 인간 행동의 주요 노선은 섹스와 폭력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는 종종 겹쳐져 있다. 그렇다면 라스 폰 트리에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인간 행동의 근원적인 것에 대해 같이 탐구해 보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근데 그런 한가한 얘기를 하고 있으면 단박에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자신 앞에서 자위나 한 번 해보라는 라스 폰 트리에의 ‘지랄 같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영화를 보고 불쾌함을 느낀다면 자신이 아직 때묻지 않았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 척도를 실험해 보시되, 누군가와 같이 가신다면 한창 사이가 좋은 애인을 데려 가시기를 권한다. 연인끼리는 이런 영화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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