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중앙문예」문학평론당선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소월의 시는 그의 시대는 물론 오늘날에도 폭넓은 공감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왔다.김소월의 시를 주의 깊게 통독해 보면, 그는 꽃을 즐겨 소재로 한시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생존시에 발간된 시집 『진달래꽃』(l924년)은 그 제명이 꽃 이름으로 되어 있을뿐아니라,『진달래꽃』『산유화』두편의 시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생각되어 왔다. 이 두 작품에 나타난 꽂의 심상들을 분석함으로씨 김소월의 시의식 구명해 보자. 우선 1922년7월「개벽」에 발표되어 김소월의 성가를 높인 『진달래꽂』을 인용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히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꽂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진달래꽃』 전문-
이 시는 님(임)을 떠나 보내는 여인의 헌신적인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해석돼 왔으며 서정주는 신문화 이후 온갖 사랑의 맞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것으로 이시를 해석한 바 있다.②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것은 제2연에 등장하는<진달래꽃>의 의미다. 율격적으로 보아서도 제2연은 두드러진 파격을 일으키며<영변><집산>이라는 고유명사를 도입하고 있다. 토착적인 지명을 나타내는 이 명사들은 시의 화자와 매우 밀착된 심층적·관계를암시하는 듯하다. 이러한 심층적 관계를 밑받침하여 시적 자아인 학자가 진달래꽃과 동일친되는 것은 시의 점진적 진행과 더불어 다음 제3연에서 드러난다.
그런데, 제2연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아름>이라는 시어는<한 아름>의 준말임은 첫 발표 지면 「개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한 아름>이라 한 시어를 1924년의 시집에서<아름>이라 한 것은 삭가적 관형어를 배제하면서 그내적 의미를 확대하기 위한 의도적 변형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내적 의미로 충만된 진달래꽃은 시의 화자와 제3연에서 일치된다. 여기서 진달래꽃은 만개한 꽃으로 생각되며, 화자인 자아도 모든 내적 의미가 포함된<아름>이라는 시어속에 확대되어 펼쳐진다.
이와 같이 떠나가는 님을 향하여 열려진 자아의 내적 의미는 님을 향한 자아의 개방을 의미하며, 진달래꽃과 자아는 열려진 상태에서 동일시 된다. 자아와 동일시된 진달래꽃을 님이 떠나 가는길에 뿌리겠다는 것은 자아의 헌신적인 사랑의 자세이며, 그것은 종래에 여러모로해석되어 온 바와 같다. 시적 자아의 열려진 상태는 제3연에서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라는 표현에서 볼수있는 것처럼 밟히고 만다. 밟는 자와 밟히는 자의 관계는 띠나 가는 님과 자아의 관계인데, 그 내면적 의미는 님을 향해 열려진 자아를 밟고 가는 것이다. 이 시에서 떠나는 님은 진달래꽂을 밟고 가는 것이지만, 사실은 시의 화자 자신을 밟고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 전체를 통해서 님이 왜 떠나는 가에 대한 합리적인 단서를 찾을 수 없고, 오직<보기가 역겨워>라는 심정적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역겹다는 심정적 반응은 논리적 타당성을 동반하는 시어가 아니며 이에대해 자아의 분신인 진달래꽃을 떠나는 길에 뿌리겠다는 것은 의지적행위다. 이 시의 마지막 행에서 죽어도 눈물 홀리지 않겠다는 표현도 눈물이라는 심경적 해결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결의에 의한 것이다. 제3연 첫행에 보이는<걸음 걸음>이라는 시어도 떠나가는 님의 한걸음,한걸음, 곧 모든걸음 하나 하나가 그를 향해 열려져 있는 자아를 밟고 가라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의 구조적 완결성은 형식적인 고려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이와같이 떠나보내는 자아의 철저하고도 완벽한 태도에서도 확인할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위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진달래꽃의 심상은 시적 자아와 완전히 일치하고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제3연에서 밟히는 순간의 진달래꽃은 처절하게 부서지는 자아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 이와 아울러 죽어도 눈물흘리지 않겠다는 배타적 자아의 강한 결의와 응축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해명할 수 있는 이러한 시적 의미는 3·1운동의 좌절과 실패라는 1920연대의 시대적 상실감과도 관계지을 수 있을 것이다. 김소월의 서정시는 사랑의 실패에 의한 님의 떠나감에 대한 자아의 응축과 결의를 주관화의 원리에 의해 시화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동시대의 상실의 아픔에 대한 심타적 반응과 더불어 고찰할 수 있다. ③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이 시에서 남녀의 원형적 심상, 곧 밟고 떠나는 남성적 의미와 밟히는 여성적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곧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 억누른 자와 역눌림을 당하는 자의 이원적 대립의 서정적 구조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소월의 『산유화』는 이와 달리 펼쳐지고 떨어지는 꽃의 심상이 자연 현상의 순환적 인식 속에서 명한 의식으로 파악됨으로써 화해적 구조를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산에는 꽂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적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산유화』 전문-
이 시는<기적적 완벽성>④을 가진작품으로 해석된 이후 많은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특히 제2연 마지막 행의<저만치>라는 시어가 갖는 거리가 합축하는 의미의 해명은 이작품을 해석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어왔으며, 독특한 여러가지 분석이 제시된바 있다.
꽃의 심장을 중심으로 이 작품을 분석하기로 하자. 우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중요한 자연물은<산·꽃·새>임을 알수 있다. 산은 공간적 배경으로 꽃과 새가 존재하는 곳이다. 꽃의 개화와 조낙은 시간의 순환적 질서를 암시하고 있다.
작품의 표면에 시의 학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꽃은 이 보이지 않는 화자의 관점에서<저만치>피어 있고, 적은 새는 꽃이 좋아서 산에서 살고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적은 새가 꽃을<좋아>한다는 시어는『진달래꽃』에서<역겨워>와 같이 심정적 반응을 표출하는 시어인데, 전자가 새의 꽃에 대한 친화력을 표현하고 후자가 님의 자아에 대한 부정을 시화하고 있음은 흥미롭다.
그런데, 이 작품의 핵심은 저만치라는 화자와 자연물의 거리 속에 적은 새의 울음이 화학되고 있으며, 새의 울음 소리는 끊임없는 시문의 질서와 아울러 자연물로서의 꽃 명징한 심상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은 세계의 펼쳐짐을 의미하고 그 피어있는 꽃을 좋아하는 새는<산·꽃·새>의 조화로운 화해의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피어 있는 꽃이 세계의 펼쳐짐을 의미한다면, 떨어지는 꽃은 세계의 닫힘을 의미한다. 이 시의 전체적 구조의 완결성은 세계의 펼쳐짐과 더불어 명징한 사물 인식을 드러내 보이고, 세계의 닫힘과 더불어 자연의 순환적 질서의 발견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듯 하다는 점에 있다.
적은 새를 시적 자아의 분신으로 본다면 꽃과 새는 자연물로서 그 존재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상호간에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산유화』가 꽃의 개화와 조낙이라는 자연의 순환적 질서를 화곡의 원리를 통하여 인식한 것이라면, 『진달래꽃』은 만개된 꽃의 심상을 통해 표출된 자아가 밟히는 대립적 원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진달래꽃』이 회복될 수 없는 상실감의 일단을 시화한 것이며, 『산유화』는 상실과 회복의 원리를 김소월의 독특한 사물 인식을 통하여 자연 속에서 발견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유화』에서 볼 수 있는 순환적 질서의 원리는 자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며,김소월이 현실적인 세계에서 실현할 수 없었음은 그의 시적 특질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주② 서정주, 김소월과 그의 시 (한국의 현대시,1969)P71∼72
주③ 신동욱, 문학작품에 나타난 꽃의 의미(문학의 해석,1976)P27∼30참조
주④ 김동리, 책산파의 거리 (신동욱편한국현대비평 지집,1975)P257∼261

<계속>

<차례>
①서론
②김소월시와 꽂의 심상
③유노사시와 꽃의 심상
④서정주시와 꽃의 심상
⑤결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