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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요직의 새얼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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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약관 30대에 입각, 경제이론에 일가견>신현확 부총리
보사부 장관 재직 3년만에 경제사령탑의 송수로 발탁된 신부총리는 정계·관계·경제계를 두루 거쳤다.
정치가라기 보다는 치밀하고 계수에 밝은 행정가 「타입」이며 경제이론에는 일가를 이루고 있다.
자유당 말엽 약관 30세로 부흥부 장관에 발탁되어 장기 경제계획을 수립, 5·16후의 경제계획 입안에 골간을 마련했다. 5·16후에 동해전력·쌍용양회 등 대기업 사장으로 한때 실업계에 몸담기도 했다.
보사부 장관 재직 때 의료보험·의료보호와 환경보전법을 마련했고 지난 9월에 각료로는 처음으로 소련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다녀왔다.
독서도 많이 하는 폭이어서 요즘도 새벽 2시까지 경제서적과 고전문학을 즐겨 읽는다고.
다독하는 데다 모든 일에 열심인 탓인지 영어에도 능통하다.
모나지 않게 일을 처리해 나가는 「스타일」이지만 틀린 일은 꼭 집어내서 고쳐야 직성이 풀린다고 주위에선 말한다.
항상 아랫사람들을 보살피면서 『정직해라』 『검소해라』고 당부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래서 오랜 관계·경제계 생활을 했어도 그를 꼬집는 사람이 없다.
본인은 경제각료의 「리더」로 발탁 된데 대해 『특별한 경위는 없다』고 겸손해했다. 경제부처에선 그의 인화, 무리를 않는 생활철학을 크게 환영하고 있다.

<도시정비 전기 마련, 「리더십」과자>구자춘 내무
4년 4개월 동안 서울 시정을 이끌어온 6척의 거구. 시장재임 동안 인맥이 복잡하기로 이름난 서울시 전직원을 일사불란하게 장악, 「리더십」을 과시했다.
도심건물을 너무 밀어젖힌다고 해서 한때 국회에서 화살도 받았지만 수도서울의 도시 정비정돈에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종로 및 무교로 확장과 천호·성산·성수대로·남부순환도로 개설·지하철 2호선 착공 등을 두드러진 업적.
그는 5·16혁명 직후 현역중령에서 군정에 발탁돼 서울시경 국장·치안국 정보과장을 거쳐 치안행정에도 밝다. 서울 시장을 비롯, 제주·경북 지사 등을 거치며 지방행정도 몸에 익혔다.
취미는 바둑(1급), 부인 추시경 여사(45)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

<재무관료 출신…소문 없이 일하는 타입>김원기 재무
충청도 양반답게 어디에서도 티를 내지 않는다.
전직 김용환 장관과 이재과에서 같은 사무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오랜 재무관료 출신. 이재 국고 국장 기획실장 세정차관보 차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보좌한 장관만도 7명이 넘는다.
차관을 마지막으로 72년 관에서 떠나 금융 인으로 새 출발한 뒤에도 소문 없이 일하는 「스타일」은 바꾸지 않았다. 난마처럼 얽힌 산은업무를 차분히 경리, 산 금가·외화표시 채권발행 등 바닥난 재원조달에 전기를 이룩했다. 고대 동창회장·수영연맹 회장 등 학창시절「스포츠맨」답게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인 편이나 술자리에서는 조는 경우가 많다.
충남 당진 출신. 54세.

<강력한 추진력…"작은 고추"란 별명도>김치열 법무
검사에서 부러운 검찰총장에 이르기까지 검찰요직을 두루 거친 뒤 내무장관으로 잠시 법조계를 떠났었다가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다.
5척 단구에 빠른 판단과 빈틈없고 야무진 일 처리로 「매운 고추」라는 말을 듣는다. 내무장관 시절엔 행정 풍토쇄신·3대 질서운동·농촌주택 개량사업 등 주요사업 목표를 정해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한 솜씨가 평가되며 특히 이번 선거에서 관의 개인을 배제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검찰총장 때는 「기소편의 주의」를 제창, 검사가 범법자를 다스리는데 있어 법에 얽매여 무조건 기소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의 법운용의 신축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취미는 「골프」. 부인 김금숙 여사(57)와의 사이에 1남4녀를 두고있다.

<경제 계획 실무주역…1급서 월반>이희일 농수산
경제기획원에서 과장·국장·기획관리 실장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이나 주불공사·청와대 비서실 근무를 통해 분야를 넓혔다.
기획원에서는 1차 5개년 계획부터 3차 계획까지 수립하는 실무 주역을 담당.
해병대 중위로 예편한 후 고려대에 입학, 대학원까지 마친 만학도.
1급에서 차관급을 뛰어 넘어 장관으로 월반했으나 지난 72년부터 7년간이나 1급을 지내면서도 불평하나 없이 일에 충실했고 과묵하면서도 일 처리엔 「스마트」하다는 편을 받고 있다.
청와대 근무 중 남미 집단 농업이민을 위한 토지매입이나 고추수입 등 농수산 분야처리에 역량을 발휘한 것이 농수산을 맡는 계기가 있으리라는 관측들.
건강 관리에도 남달라 「아파트」 7층에 살면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닌다,

<3개 청장만 10년…과묵한 실천형>고재일 건설
말이 별로 없다. 고집이 세다는 정도로 일만 해나가는 실천형이다.
개각이 있을 것이라는 22일 상오 중에도 안양 세무서에 세무행정 확인차 나가 있었다.
그의 인품을 소탈하다고 평하기도 하지만 일에는 그만큼 꼼꼼하고 빈틈이 없다
그래서 조달청(68년11월) 전매청(71년6월) 국세청(73년3월) 등 일선 행정관서인 청장만 l0년 동안 했다.
육사 8기. 군인답지 않게 아는 사람에겐 싹싹하지만 일단 일에 부닥쳐 옳다고 생각하면 힘차게 밀어붙인다.
주위에선 그것을 『박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확인 행정을 하러 바쁘게 전국 세무서를 돌아다니는 틈틈이 소주를 즐겨 마신다.
취미는「골프」라지만 별로 잘 치지 못한다. 시간이 없어 자주 못 쳐서 그렇단다.

<행정에 저력…일에는 「사」가 없어>홍성철 보사
원만한 성격에 호걸 풍으로, 일할 때는 사가 없다. 총리 비서실장을 거쳐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내무장관을 역임, 행정에는 저력을 갖고 있다. 내무 장관직을 떠난 후 민간 홍보기관인 한국국제 문화협회장을 맡아 해외홍보에 힘써왔다.
경기중·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예비역 해병대령.
군에서 예편 후 주미 대사관 참사관을 거쳤고 총리 비서실장·청와대 경무비서관으로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면서 행정력을 익혔다. 그 동안 나환자촌인 상연촌(경기도)을 남몰래 지원해 왔다.
해방 전 평남 축구 「팀」의 「센터·포워드」로 이름을 떨쳤고 못하는 운동이 없을 정도의 「스포츠」광. 취미는 「골프」.
황해도 은율산(54). 부인 김명자 여사가 3년 전에 별세, 2남과 현대 「아파트」에서 산다. 독실한 「가톨릭」신자.

<자원 외교 통해 솜씨 보인 경제 엘리트>이재설 체신
흰색 「싱글」이 어울릴 정도로 거무스레한 얼굴과 근육형 동체가 얼핏 「스포츠맨」의 인장이다. 용모 그대로 멋도 잘 내고 성격도 활달해서 「보스」 기질을 곧잘 발휘한다. 재무·건설·기획 등 중요 경제부처의 차관을 역임한 경제관료이면서 외교관으로서의 외도(?)도 손색없이 해낸 것은 그의 기질 때문인 듯.
인도대사 시절엔 예의 적극성으로 인도 정부의 실력자들과 교분을 맺고 경제협력과 자원외교에 힘을 쏟았다. 이번의 발탁도 이런 연고인 것 같다.
친력이 나빠 의사수업을 중도 포기한 뒤 고시를 거쳐 재무관료로 출발했다.
재무부 시절에는 외환통 인상에 어울리게 취미도 많은 두주형. 서울산 46세.
지금도 『의사가 됐었으면 좋았을 걸』하는 농담을 잘하지만 그것은 술자리에서 일뿐이다.

<원리원칙 따지는 육군 경리감 출신>황인성 교포
교통행정을 맡은 황 장관은 모든 일 처리에 행장 원리원칙을 마쳐 융통성을 보이지 않는 강직한 성격.
아랫사람들의 사생활에까지 자상하게 마음을 써주는 친근감이 있다.
국무총리 비서실장에서 전북지사로 지방행정 분야에 첫 발을 내디딘 후 지난해 이리역 폭발사고 복구에서 역량을 과시.
육사 4기 출신으로 예비역 소장 출신인 그는 육군 경리감·국방부 재정국장을 거친 군재정통. 지사시걸 무주지역 사업, 무주 공무원 우대 등으로 소문이 나돌아 한때 고전했으나 감사결과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고 공화당 공천을 교섭 받았으나 사양.
과묵하며 술은 한 두잔 정도고 담배는 입에도 안 댄다. 전북 무주산(51).
취미는 「골프」와 「테니스」. 부인 이애섭 여사(48)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고 있다.

<구조공학 전공의 교수 출신 「빌리」>최종완 과기처
교회는 안나가지만 「빌리」 또는 「빌리 목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적이 많다.
미국의 「빌리·그레이엄」 목사의 이름을 본떠서 지어진 별칭이다.
대머리지만 준수한 용모에 말과 연설을 잘하기 때문에 붙여졌다.
관계에서 주례를 가장 많이 서는 편. 서울대를 나와 미「미네소타」 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구조공학 전공).
귀국 후 서울대 공대 조교수로 있다가 서울시 수도국장으로 발탁된 것이 관계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가 돼 서울시부시장→건설연구소장→강원지사→공업진흥청장 (6년·초대)을 역임. 77년 7월엔 우리 나라 고위 관리로는 처음으로 회의(국제전기 표준회의) 참석차 소련을 다녀왔다. 부인 성정자 여사도 같은 서울대 공대 화공과 출신. 정구는 「프로」급이고 등산도 자주 한다.

<「보스」기질에 일 처리는 세심한 편>김용태 제1무임소
유신국회 6년간 공화당 원내총무로 여권의 원내 야전사령관 역할을 해낸 공로가 발탁 이유로 꼽힌다.
5·16에 민간인으로 참여, 6대 국회에서 공화당 초대 원내총무를 지냈고 68년 소위 국민복지회 사건으로 공화당에서 제명 당하는 등 기복이 많았다.
「보슨 기질이 있어 정가에서는 「두목」이란 별명을 갖고 있고 이름의 「이니셜」을 딴 YT라는 애칭이 널리 통용된다.
괄괄하고 직선적인 성격이나 일 처리는 세심한 편이며 유신국회의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야당과의 대화를 넓히는데 기여를 했다.
국방·역사에 관심이 많고 「한국은 외롭지 않다」 「내일의 십자로」 「당면한 한국의 국방과제」 등 저서가 있다. 취미는 낚시.

<4성이지만 무인답기보다 선비>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
주중대사 시절 『귀국하면 정치를 하게 될 것 같다』며 의원출마를 꿈꿨으나 현지전 중 도중하차해 결국 관직으로 되돌아왔다.
주중대사 8년, 중앙정보부장 1년 2개월을 빼고는 연전재학 시 학병에 간 인연으로 사단장·군단장·육군참모총장(66년) 등 군부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나 4성 장군을 지낸 무인답다기보다 선비의 깔끔함이 더 풍기는 부드러운 인품.
51년 육군 포병학교 교장 재직 때 박정희 대통령과 같이 근무한 적이 있고 박대통령을 꾸준히 도와 인연이 깊다
대학 (연전상과)때부터 익힌 기악연주 솜씨는 「프로」급으로 육군 군악대를 창설했으며 지금도 틈틈이 악기를 만진다.
권총의 명사수로 한미장성 사격 때 늘 1등을 차지한 관록을 갖고 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는 두주도 불사. 계씨 김계일씨는 육군 소장이며 부인 서봉선 여사(50)와의 사이에 2남 1녀.

<사무실엔 항상 칠판…브리핑 수자통>정상천 서울시장
부산대 재학 중 고시 사법·행정 양과에 합격해 경찰에 투신, 자유당·민주당 정권을 거쳐 현정부에서 치안국장까지 지낸 경찰관리 출신. 청와대 근무 중에는 숫자에 밝아 「컴퓨터」란 별명을 들었고 박대통령이 숫자 확인 때 자주 찾았을 정도.
「브리핑」 받기를 좋아해 하루 몇 건씩 소관부처 관계관들로부터 설명을 듣는 것이 예사이고 집무실 안에 늘 큰 칠판을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하를 아끼는 것으로 소문나 있어 연초에는 내무계통을 중심으로 부처 직원들이 정씨방에 줄을 서는 것이 보통이고 청와대 근무 중 같이 일한 직원은 대체로 1계급 승진돼 나갔다.
박대통령의 지방시찰에 꼭 수행했고 최근에는 민족문화 연구원 설립에 공을 쌓았다. 취미는 「핸디」 16의 「골프」. 부인 김영주 여사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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