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입시 개편의 초점은 사교육 방지가 아닌 공교육 정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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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환 전국대학입학처장협의회장은 공교육 정상화의 방안으로 토론·글쓰기 교육을 강조했다. 사진=김수정 기자

“토론식 교육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의 토론과 글쓰기 역량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둬야 합니다.” 무한경쟁과 통섭의 시대에 인재교육과 대학입시가 어떤 방향으로 개선돼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유기환(56·한국외대 입학처장) 전국대학입학처장협의회장은 이같이 말했다. 유 회장은 “학생들이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고 대학이 우수 인재를 선별하는 데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전국대학입학처장협의회 신임 회장에 선출돼 지난 4월 활동을 시작한 그를 9일 한국외대에서 만나 대학입시가 나갈 방향에 대해 물었다.

-이번 대학입시의 간소화로 대학마다 전형이 비슷해져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학생을 선발했던 취지가 퇴색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1994년 수능시험 도입 후 20년 동안 입시체제가 17번이나 바뀌었다. 그 사이에 입학사정관 전형이나 특기자 전형을 실시해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을 뽑는 성과도 올렸다. 어떤 정책이나 상품이라도 수요자가 사용하기 편하도록 간소화하는 방향은 맞다고 본다. 이에 따라 이름만 봐도 어떤 선발방식인지 알기 쉽게 전형 명칭을 바꾼 것은 참 잘한 일이다. 하지만 전형이 너무 축소되고 서로 비슷해져 대학 입장에선 다양한 인재를 뽑는 데 어려움이 커졌다. 간소화와 다양성을 모두 잡아야 하는 고민거리가 생겼다.”

-추천서·활동보고서 등이 없어지고 자기소개서마저 작성 분량이 줄어 수험생도 자기 역량을 보여 줄 기회가 줄었다. 대학도 지원자를 다각적으로 들여다볼 창문이 줄어 인재 선발에 어려움이 커 보인다.

 “학생부종합 전형은 올해 처음 시행한다. 수상실적 등 소위 스펙을 예전엔 폭넓게 반영했으나 올해는 규정된 범위를 벗어나면 0점 처리된다. 이 때문에 고교 교사들도 제출서류에 금지된 스펙을 실수로 썼다가 학생이 불합격되는 일이 발생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지만 입학사정관 전형과 같다고 생각하고 준비하면 좋겠다. 대학들도 지난 5년 동안 입학사정관 전형을 실시하면서 나름의 노하우와 평가기준을 갖춰 큰 시행착오는 없겠지만 관련 민원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진 의문이다.”

-간소화 정책에 따라 평가요소가 줄어 대학마다 전형이 비슷해졌다. 교과·논술·수능 점수가 당락을 좌우하는 모양새가 됐다. 줄 세우기식의 과거로 돌아가는 건 아닌지.

 “그러려면 전국 1600여 개 고교의 내신 질이 모두 같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미 균질적이지 않다는 걸 알지 않나. 대학은 이 점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1600여 개 고교를 똑같이 여겨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평가의 공정성을 해치는 일이다. 올해 입시에선 전형 간소화로 특목고 학생의 입지가 좁아졌다. 특목고 학생이 유리하다고 평가받는 특기자 전형의 경우 대부분 축소·폐지됐다. 한국외대만 해도 관련 모집인원이 50%나 줄었다. 다만 사교육으로 길러진 학생인지 아닌지 보기 위해 예전엔 외부 스펙 자료가 참고가 된 측면도 있었는데 지금은 볼 수 없게 됐다. 사교육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지만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 입시 개편의 초점을 사교육 방지가 아닌 공교육 정상화에 맞춰야 한다.”

-내신 비중이 큰 학생부 전형이 올해 수시에서 급격히 확대됐다. 하지만 수험생들의 내신은 이미 결정된 상태라 특히 수능·논술 위주로 공부한 수험생의 피해가 크다는 지적이 있다. 준비시간 없이 너무 빨리 바꾼 건 아닌가. 이를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지.

 “선택형 수능도 그렇고 공청회 때마다 많은 전문가와 함께 의견을 충분히 전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이를 얼마나 반영하는지, 그런 공청회가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앞으로 입학처장들과 대입 세미나를 열고 교육부 관계자들과도 공식적인 토론 자리를 자주 열어 사후 대책이 아닌 예방 정책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또한 고교와 대학 간 긴밀한 협의체를 이뤄 교류를 확대하려 한다. 현 입시정책 수립 과정은 술래잡기식이다. 교육부가 기본안을 내밀면 대학은 고교 교육현장을 모른 채 전형을 만들고, 고교는 대학의 의도를 모르고 전형에 꿰맞춰 지도하느라 급급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가 아니라 이젠 마주보기를 해야 한다. 대학들이 논술 전형을 만들어 놓고 고교에 가서 이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니 고교들이 답답해 사교육 전문가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요즘 대학들마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교양·인성·기초학문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대학입시가 벌여 놓은 고교 교육과 대학 교육 간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서라던데.

 “융복합시대에 대학은 학생들이 통섭 능력과 합리적 이성을 갖추기를 바란다. 하지만 입시에 찌들어 문제풀이 기계로 양성되고 있어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 그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은 좋은 시도다. 정보기술(IT) 선구자인 스티브 잡스나 빌게이츠가 인문학을 강조하는 이유도 창의성 때문이다. 이를 기르는 좋은 방법이 토론과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고교에서 이 두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도 지난 5년간 입학사정관제를 경험하면서 깨달은 바가 크다. 학력우수자 말고도 잠재력 우수자도 뽑으려는 욕심이 커졌다. 융복합과 특성화, 간소화와 다양화를 모두 갖춰야 하는 대학 입장에서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중시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기르는 좋은 방법이 바로 토론과 글쓰기다. 이는 입시에서 자신의 역량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자 사교육의 폐해도 줄이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유기환 회장=지난 3월 19일 전국대학입학처장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2004년 한국외대 프랑스어과 교수로 부임해 2012년부터 지금까지 입학처장을 맡고 있다. 현재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전형관리위원회 실무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통섭 교육을 위해 이중 전공, 교차 강의, 모집단위 광역화 등을 확대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박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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