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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9)극단 「신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6월25일 당일만 해도 사태가 그렇게 긴박함을 알 수 없었다. 26일 월요일 극장엘 출근하니 북괴가 38선 전역에서 남침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국군이 반격중이니 안심하라고 해, 이 소요는 쉽게 진정될 줄 알았다. 전속 단원실엔 윤방일·이화삼·박경왕·송재노 등을 비롯해 젊은 연기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 사태를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물 건너 불 구경하듯 덤덤이 시국애기를 했다.
그래서 26일 밤은 술을 마셨을 뿐 아니라 극장 숙직실에서 동료들과 밤샘 마작까지 했다. 27일 늦게 집에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28일 새벽 누군가가 요란히 대문을 두드렸다. 아내가 나가더니 이웃에 사는 오사량이란 것이다. 오사량은 황급히 뛰어 들면서 『피신을 않고 무얼합니까-』며 따지듯이 독촉을 했다. 정부는 이미 수원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오사량의 독촉에 세수도 못하고 아내와 이별을 했다.
『곧 수복이 될테니 아이 <장남방왕(36) 당시 8세>데리고 잘 있으라-』고 한마디하고 대문을 나섰다. 아들놈은 벌써 놀러나가고 얼굴도 보질 못했다. 돈암동을 떠나 성북경찰서 앞을 지나려니 경찰들은 모두 사복을 입고 밀집 모자를 쓴 채 서성대고 있었다. 극장엘 오니 극장은 텅하니 비어있었다. 그렇게 떠들던 단원들도 한사람 보이길 않았다.
극장 앞 태평로 넓은 길은 부상병을 실어 나르는 군 「트럭」으로 술을 이었고, 서대문 형무소서 풀러난 죄수들이 죄수복을 그대로 입은 채 활보하고 다녔다. 하룻밤 사이에 세상은 뒤바뀐 듯 했다. 오후가 되자 부슬부슬 비가 뿌리기 시작했고 밤샘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을 경도로 잠이 쏟아졌다. 『에라I 잠이나 한숨 자고 길을 떠나자. 이래 가지고야 움직일 수가 있나』하는 생각에 인사동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그런데 왠걸, 할머니댁엔 보따리와 아들 손을 쥔 아내가 와 있었으며 대문을 들어서는 나를 보고 질겁을 했다. 『아니. 벌써 한강을 넘은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무엇을 했느냐』그 소리를 질렀다. 결국 할머니와 아내에게 등을 멀러 도로 대문을 나섰다. 가족들에겐 부산 초량서 개업하고있는 아버지에게로 간다고 했다. 날은 어두워졌고 길은 이제 피난민 행렬로 가득 메워졌다.
서울역을 지나려니 복혜숙 여사가 피난 짐을 가득 실은 수레를 밀며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만 반가워하면서도 『어떻게 될 것인가』하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갈월동 유치진 선생댁으로 향했다. 동항을 할까 해서였다.
유선생댁도 저녁을 마치고 안절부절못하고있었다. 유선생에게 함께 떠나자고 했더니 3남매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만 차마 혼자서는 떠날 수가 없다고 했다. 부인이 간곡히 권유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나는 다시 혼자 길을 나섰다. 부슬 부슬 부리던 비가 날이 어두워지면서 폭우로 변했다. 그대로 비를 훨씬 맞은 채 한강인도교엘 닿으니, 아비규환 바로 그것이었다. 물 밀리듯 밀어닥치는 인파 속에 후퇴하는 군용차량이 꼬리를 이었고 그 사이사이에 자가용을 탄 피난민들이 끼어 들었다. 한 육군대위가 피난민 길목을 막아서서 피를 토하는 연설을 했다. 『조국을 버리고 어디를 가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귀를 기울이는 이는 없어도 그 대위는 민족적인 울분과 의분으로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던 것이다. 그러고 그 순간이었다. 천지를 깨뜨리는 폭음이 한강인도교 중간쯤서 터져 나왔다. 바로 내 눈앞에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하늘을 붉게 물들인 불빛 속에 쇠붙이는 엿가락처럼 휘어 내렸고 피난민속에 끼어 들었던 몇 대의 자가용이 강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원효로 쪽 둑 아래로 미친 듯이 내달았다. 얼마쯤 지났을 까. 나는 잡초가 발목을 뒤덮는 둑 한가운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앉아 있었다. 비는 억수로 쏟아지면서 멎을 기미를 보이지 앉았고 방이 깊어갈수록 둑 주위엔 피난민들로 가득히 메워졌다. 무릎을 쪼그린 채 길고 지루한 밤을 새우고 이튿날 새벽을 맞았다. 날씨는 말갛게 깨 있었지만 밤새 내린 폭우로 한강물은 엄청하게 불어 황토물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문장을 건너야 한다. 』 - 첫 결심은 했지만 아무도 엄두를 내는 이는 없었다. 짐과 가족이 딸린 피난민들은 당연했다. 나는 이틀 밤을 꼬박 세운데다 변변히 먹지도 못해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지쳐있었다. 그래도 한강은 건너야한다는 결심에 신은 팽개치고 바지를 벗어 목덜미에 동여맸다. 그리고 간단히 준비운동을 하고 도도히 흐르는 한강으로 뛰어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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