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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최경주 맨발 진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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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까다로운 '아멘 코너' 중 하나인 13번 홀(파5.464m). 최경주(나이키골프)는 워터 해저드에 빠진 공을 뚫어지게 내려다봤다. 흐르는 물속에 90% 이상 잠겨 수면 위에 약간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양말을 벗고 오른쪽 바지를 걷어올렸다. 그러고는 오른발을 물속에 담근 뒤 힘껏 공을 쳐냈다.

동시에 "와"하는 갤러리의 함성이 터졌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성공시킨 3온. 홀에서 3m 거리에 붙인 절묘한 샷이었다. 1998년 7월 US여자 오픈 때 박세리(CJ)의 '맨발 투혼'을 떠올리는 장면이었다. 아쉽게 버디 퍼트를 놓쳐 파를 기록했지만 홀을 떠나는 그에게 갤러리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8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개막한 마스터즈 1라운드. 10번 홀에서 출발한 최경주는 비로 첫날 경기를 다 끝내지 못했다. 11개 홀을 마친 뒤 해가 져 경기를 중단했고 한국시간 8일 밤 경기를 재개했다.

한국시간 8일 자정 현재 최경주는 15개 홀에서 1오버파(버디 2, 보기 3개)를 쳐 공동 26위다. 15개 홀에서 5언더파를 친 크리스 디마르코(미국)가 단독선두, 지난해 챔피언 필 미켈슨(미국)은 13개 홀에서 3언더파를 기록, 공동 3위다. 비제이 싱(피지)은 2언더파로 공동 5위다. 세계랭킹 1위 복귀를 노리는 타이거 우즈(미국)는 잇따른 불운 속에서 1오버파로 약간 밀렸고 어니 엘스(남아공)는 4오버파로 부진하다.

비 때문에 개막이 두 시간 늦어졌다. 최경주는 첫 번째 홀(10번 홀) 보기로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경기내용은 괜찮았다. 최경주는 "첫날 이 정도 성적이면 만족한다. 몸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아멘 코너에 들어선 탓에 초반엔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13번 홀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스스로 무너졌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마스터즈에서 세 번(1997, 2001, 2002년) 우승했던 우즈는 최경주가 물속 묘기샷을 보인 그 13번 홀에서 2온을 하고도 보기를 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 이글을 노리고 퍼트한 공이 내리막을 타고 계속 굴러가더니 물에 빠져버린 것. 우즈는 1벌타를 먹고 그 위치에서 다시 퍼트(4타째)를 했고, 결국 2퍼트로 막아 보기를 하고 말았다.

오거스타=정제원 기자

*** 마스터즈 이모저모

○…궂은 날씨 탓인지 첫 날 경기에선 최악의 스코어가 속출했다. 1970년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빌리 캐스퍼(73)는 16번홀(파3)에서 공을 다섯 차례나 물에 빠뜨리면서 14타를 쳤다. 1라운드 스코어는 웬만한 아마추어 성적에도 못 미치는 34오버파 106타. 1950년 허먼 배런이 세운 이 홀 최다 타수(11타)와 56년 찰스 컨클의 18홀 최다타수(95타)를 한꺼번에 깨뜨린 것이다. 170야드 짜리인 이 홀은 비교적 쉬운 홀로 꼽히지만 티잉그라운드와 그린사이에 큰 연못이 있어 얕보다간 봉변을 당하는 홀이다.

폴 케이시(영국)는 13번홀(파5)에서 더블 파(10타)를 기록하면서 79타를 쳤고, 챔피언스 투어에서 뛰고 있는 퍼지 죌러(미국)는 2번홀(파5)에서 쿼드러플 보기(9타)를 했다.

○…마스터즈가 해마다 악천후 때문에 파행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 1993년 처음으로 2라운드가 순연된 것을 시작으로 98년부터 2001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2003년에는 폭우로 인해 첫날 경기가 순연돼 둘째날 1,2라운드 경기를 한꺼번에 치렀다.

지난해에도 1라운드가 2시간 이상 순연됐다. PGA투어에선 마스터즈를 포함해 올 들어 열린 15개 대회 중 9개 대회가 악천후로 중단되거나 순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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