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세월호 막자" 국가개조 10대 조치 아직 1건도 시행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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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발생 한 달여 만인 지난달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우리 사회 곳곳의 적폐를 도려내 국가개조 수준의 변화를 꾀하겠다고 천명했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청사진에 따라 정부는 실천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달, 대국민담화 이후 약 한 달이 지난 16일. 본지는 그간의 진척상황을 점검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공분을 일으킨 척결 대상 ‘공적(公敵) 1호’는 관피아(관료 마피아)였다. 관피아의 적폐 근절을 위해 안전행정부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마련해 최근 국회에 제출했다. ▶취업제한 대상 기관 3배 확대 ▶취업제한 기간 연장(퇴직 후 2년→3년) ▶취업이 제한되는 업무관련성 범위 확대(퇴직 전 최근 5년간 속했던 부서 업무→기관 업무) 등이 골자다.

5월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김영란 법’을 심사했지만 이 법은 15일까지도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개정 공직자윤리법은 취업 제한 규제만 강화했을 뿐 이를 어겼을 경우 받는 처벌 규정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허점이 있다. 공직자윤리법상 심사를 받지 않은 채 취업이 제한된 기관에 들어간 퇴직 공직자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면 그만이다. 심사에서 불가 판정을 받고도 이를 무시한 채 취업했을 때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지만 실제로 형사처벌을 받은 퇴직공직자는 2006년 이후 두 명뿐이다.

 이런 처벌 조항은 관피아들이 얻는 이득에 비해 턱없이 가볍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관피아를 ‘모셔가는’ 기관은 “나중에 적발되더라도 수백만원에 불과한 과태료나 벌금은 우리가 대신 내주면 그만”이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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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세월호 참사 대국민담화 도중 사과하는 박근혜 대통령. [중앙포토]

 정부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일명 ‘김영란법’)으로 이런 허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담화에서 조속한 처리를 촉구한 김영란법은 국회라는 거대 이익집단의 벽에 막혀 있다. 지난해 국회에 제출된 김영란법은 국회의원, 공무원, 판검사 등이 금품을 받을 경우 직무 관련성만 있으면 대가성이 없더라도 처벌하는 것이 골자였다. 세월호 참사 직후 관피아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국회 정무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교사·언론인과 가족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일부 의원이 김영란법에 따른 직간접적 적용 대상이 1786만 명에 이른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여야는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논의를 중단했고, 그동안 전반기 국회가 끝나버렸다. 여야 지도부는 지금도 “시급히 처리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할 뿐이다.

 변호사·회계사·세무사 등 전문자격증이 있는 ‘힘센 기관’의 퇴직공직자는 취업 심사 대상에서 빠진 것도 관피아 대책의 허점이다. ‘법피아(법조 마피아)’를 막기 위해 추후 국회 심사 과정에서 보완이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이와 관련,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은 이런 예외규정을 삭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지난해 6월 법안소위로 넘겨진 뒤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한 채 1년 동안 방치되고 있다.

 대규모 인명피해를 낸 기업주의 재산을 환수해 손해배상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일명 ‘유병언 법’도 법무부가 추진 중이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법(사주가 돈을 빼돌린 뒤 일부러 회사를 파산시켜 배상 책임을 면하고 ‘깡통’이 된 회사를 제3자 명의로 싸게 되사는 것 방지) ▶범죄수익 은닉 규제법(가족이나 제3자 명의로 숨겨놓은 재산도 추징) ▶다중인명피해범죄 특례법(심각한 인명피해사고를 낸 경우 최고 징역 100년형) 등이 추진되고 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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