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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두둔하고 나선 국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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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유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유정
사회부문 기자

“우리가 감사원이 잘못했다고 지적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지난 13일 국토교통부 철도건설과 직원 A씨로부터 이런 항의 전화를 받았다. ‘레일 부품업체 에이브이티(AVT)의 호남고속철도 레일체결장치 독점 납품 배경으로 감사원의 잘못된 감사가 작용했다’는 본지의 보도가 나간 직후였다. 국토부는 이날 “감사원 감사 결과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는 내용의 해명자료까지 냈다.

 하지만 국토부의 이런 해명은 사실 관계를 호도한 것이다. 감사원은 2010년, 2012년 두 차례 철도시설공단에 대한 감사를 벌였다. 당시 감사원은 “경부고속철도 2단계에 납품된 영국 P사의 레일패드가 품질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하자가 있으므로 재시공을 하라”고 지적했다. 이를 근거로 호남고속철도 건설 사업에서 P사가 배제됐다. 대신 경쟁사인 AVT가 2000억원대의 레일체결장치 사업들을 독점으로 따냈다.

 그러나 당시 감사에서 제시된 품질 기준이 문제가 됐다. 잡음이 계속되자 국토부는 지난해 8월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3월 31일 철도시설공단에 그 결과를 통보했다. 국토부는 “문제가 된 레일패드의 품질 기준은 국내에만 있는 것으로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특정 업체의 독점 등이 발생하므로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감사원의 앞선 감사결과를 백지화시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당시 국토부는 이례적으로 조사 결과를 통보하면서 “감사원의 P사 제품 재시공 처분이 품질 관리 기준을 직접 제시한 것으로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감사원을 감싸는 듯한 내용을 넣었다. 이번에 감사원의 잘못을 지적한 본지 보도가 나간 이후에도 국토부는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자체 조사 결과와 어긋나는 해명자료까지 내며 감사원을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더구나 감사원은 레일체결장치 감사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교통분야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국토부가 왜 그랬을까. 피감기관으로서 감사원의 심기를 건드릴까 우려했기 때문은 아닐까.

 실제 국토부 송석준 대변인은 15일 “기관 간 해석이 다른 부분인데 국토부 입장에서 ‘감사원이 잘못했다’고 명시적으로 지적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철도 납품 비리는 막대한 세금을 낭비할 뿐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국토부는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을 감독할 책임이 있는 주무 부처다. 하지만 감사원 눈치를 보느라 자체 조사 결과마저 축소시키는 느낌이다. 국토부는 이 같은 보신주의가 ‘철피아’ 유착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이유정 사회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