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최경환 경제팀에 거는 기대와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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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새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내정된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은 당내에서 유일하게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 통화가 가능한 이른바 ‘친박 실세’다. 관료로 시작해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을 하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지난 정권 땐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공무원·언론인·국회의원·장관을 거치면서 다양한 경력과 소통 능력을 쌓았다. 리더십과 소통 부족으로 우왕좌왕하다 시간만 보낸 현오석 부총리와 달리 ‘실세 부총리’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새 경제팀에 대한 기대도 크다.

 그러나 경제 현실은 만만찮다. 최경환 경제팀이 풀어야 할 과제는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우선 1기 경제팀이 계획만 세우고 끝난 각종 경제 현안들을 실천에 옮겨 성과를 내야 한다. 1기 경제팀은 경제민주화냐 성장이냐를 놓고 줄다리기나 하다가 박근혜 정부 초기 1년 반, ‘골든 타임’을 허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올 들어 겨우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밑그림을 그렸지만 추진 동력을 얻기도 전에 세월호 참사로 두 달간 국정이 올 스톱되는 통에 일다운 일은 해보지도 못했다.

 그러는 사이 간신히 살아나던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서민이 체감하는 경제는 더 나빠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 성장률 전망을 0.2%포인트 낮춘 데서 보듯 소비·투자·고용 등 각종 지표가 빨간 신호로 바뀐 지 이미 오래다. 원화 가치도 가파르게 오르면서 그나마 버팀목이 돼주던 수출마저 위태롭다. 삼성그룹을 빼면 1분기 30대 그룹의 투자는 지난해보다 되레 줄었다. 5월 취업자 증가 폭은 10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이러다간 저성장이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 될 판이다.

 새 경제팀은 이런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우선 경제 리더십부터 확실히 세워야 한다. 경제 리더십이 뭔가. 국회에서 막혀 있는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들부터 신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정치권의 협조를 끌어내는 것, 끈끈한 정책 공조와 통일된 정부 목소리를 통해 시장과 함께 호흡하는 정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당 원내대표 출신 최 후보자에게 기대하는 역량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나.

 좀체 깨어나지 않는 내수와 위축된 투자를 이끌어내려면 정부·시장의 소통과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제개편과 부동산 임대소득 과세 등을 놓고 엇박자를 보였던 1기 경제팀의 실패를 되풀이해선 곤란하다. 마침 새 경제팀은 좌장인 최 후보자와 안종범 경제수석,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동문수학한 사이다. 끈끈한 정책 공조와 통일된 정부 목소리를 기대한다.

 삼가야 할 것도 있다. 정치인 출신 최 후보자는 특히 인기영합책의 유혹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당장 입에 달콤하다고 포퓰리즘 정책을 썼다가 망국의 부메랑으로 돌아온 예를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간의 발언과 행적을 종합해 보면 최 후보자는 매파 성장론자에 가깝다. 시장에선 벌써 화끈한 부양책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화답하듯 그는 지난 주말 기자들과 만나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 방침을 밝혔다. 그는 이를 “성장 과실이 국민에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는 민생 행보”로 규정했다. 최 후보자는 지난 4월에도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 규제를 지역별·연령별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대출 규제는 가계부채와 연결돼 있다. 1000조원 넘는 가계부채 문제는 한국 경제의 뇌관이다. 부동산 경기 불씨를 지핀다며 확 풀어놨다간 감당 못할 역풍을 맞을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힘 있는 부총리로서 그 힘을 적절히 쓸 줄도 알아야 한다. 재량권 행사는 필요하지만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일방통행식이어선 안 된다. 벌써 ‘만사경통(모든 일은 최경환으로 통한다)’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판이다. 인사 청탁을 위해 최 후보자에게 줄을 대려는 이들로 장사진을 이뤘다는 소리까지 있다. 국정의 성패는 결국 경제 활력과 성장, 일자리 창출 외에 다른 게 없다. 그것만 바라보고 생각해도 이루기 어려운 목표다. 최경환 경제팀의 실패는 곧 박근혜 정부의 실패, 나아가 대한민국의 실패로 이어질 것이란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