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화의 진수|일본서 70점 특별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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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은 불교를 믿는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압도적으로 불화가 발달된 나라다.
한국의 사찰은 어느 전각에나 정화가 가득 걸려 있고 바깥벽에까지 울긋불긋 그려진 예가 허다하다.

<대표적 불화는 정화>
불화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3가지로 구분한다. 전각의 토벽이나 판벽에 그린 벽화, 깁이나 종이에 그려 벽에 거는 탱화, 불경의 한쪽에 그린 경화 등이 그것이다. 그밖에 괘불은 옥외 의식때에만 거는 대형의 탱화이며 건물의 단청에도 약식의 불화를 적잖게 그려 넣게 된다. 이런 여러 가지 불사의 그림중 대표적인 것은 탱화인 까닭에 불화라 하면 흔히 탱화를 연상한다.
이런 불화의 기원을 찾아보면 기원전 2세기께의 인도 「아잔타」 벽화가 현존하는 가장 오랜 화적. 우리나라에 있어서 불화의 시초는 불교가 전래한 4세기께로 짚어 볼만하다. 고구려의 담징이나 신라의 솔거는 역시 불교 회화의 명인들이었다.
고구려와 백제의 화수들은 일본에 건너가 그들의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대형에 금색이 특징>
고려시대는 불교미술이 더욱 빛났던 시기이다. 불교는 국교였던 만큼 나라의 화공중엔 석적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현존하는 고려 때 그림은 거개가 불화이며 일반 회화작품은 고려말기의 극소수뿐이다.
한국의 불화는 비록 일정한 격식에 의해 제작된 종교화이지만 삼국시대 이래의 오랜 전통을 이어받아 높은 기품과 세련된 미를 지니고 있다. 일반회화처럼 시대적 화풍에 휘말리지 않고 한국 독자적인 섬세 정교한 기교와 종교화다운 존엄성을 간직하며 계승돼 왔다.
특히 고려 불화의 남아있는 예를 보면 큰 화폭의 탱화들이 진채에다 금색이 찬란한 점을 특징지워 말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 최성기 만큼 빛나지 못했지만 양적으로 확대된 감이 없지 않으며 또 단원같은 명화가도 불화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존엄성 간직한 채 계승>
요즘 일본에서는 한국의 옛 고려불화 특별전이 열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다.
나량에 있는 사립박물관인 대화문화관에서 오는 19일까지 1개월간 열리는 이 불화전에는 일본에 있는 고려시대의 탱화 53폭과 금은자의 특수한 경화 17점이 처음으로 한목 공개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 현존하는 이들 고려불화는 여러 박물관이나 사찰 및 개인소장품으로 흩어져 있는 것들인데 그중 탱화 20점과 경화 2점이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고려 경화는 한국에도 다소 남아있는 편이나, 탱화는 전무한터여서 일본에 그토록 많다는게 다행스럽고 또 한편으론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에는 전래 사찰이 그렇게 많음에도 고러 탱화가 한 폭 남아있지 않은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목조건물이어서 불화가 발달된 대신 무수한 전란을 겪는 동안 건물과 함께 소실돼버렸고 또 불화가 너무 퇴락하면 낡은 것을 태우고 새로 모시는 습속에도 이유는 있다.
그러나 임란 때 얼마나 많은 사찰이 소실되고 얼마나 많은 불교미술품이 약탈돼 갔을까.
일본에서는 『불화가 청래됐다』고 말함으로써 삼국시대 불교전파 시기의 양상인 듯 해설하고 있다.
과연 고려 불화들이 그들의 간청에 의해 나눠 모시게 된 것일까. 대구 동화사의 기록에는 분명히 임란 때의 약탈상이 소상히 밝혀져 있다.

<"독립된 「장르」로 발전">
미술사가인 최정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한국만큼 불화가 독립된 「장르」로 유난히 발달된 나라가 없다. 우리는 그것은 한낱 예배대상이나 종교화로만 생각해 온게 사실인데 오히려 외국에서 근래 한층 높이 평가되는 실정이다. 곧 한국적인 독자성과 오랜 전통을 계승한 고격이 거기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학계의 연구가 깊이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아쉬워했다.< 글 이종석 기자 사진 일본대화문화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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