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자선서화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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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린이들에게 배움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자선서화전이 30여 년을 홀몸으로 부녀계몽과 가난한 어린이들을 돌보며 살아온 정봉순할머니(서울동대문구상봉2동125의63)의 노력으로 D일 예총화랑(서울종로구인사동)에서 개막됐다.
금년 64세의 정할머니 고향은 충북 충주.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서울에 출가했던 정할머니는 해방되던 해 후 손도 두지 못한 채 남편과 사별했다. 당시 나이31세.
주변의 권유로 부처님에 귀의한 정할머니는 남편 잃은 슬픔을 딛고 남은 인생을 사회에 봉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들어간 곳이 대한부인회(한국부인회전신) 서울시지부 산업부.
미군정하에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 오는 외래풍조속에서 정할머니는 주부들을 상대로 국산품을 애용하도록 계몽활동을 펐다. 한글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주부들을 모아 놓고 제품의 용도와 길을 비교하면서 국산품 애용의 이유를 설명하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정할머니는 또 고학생 원호회에도 가입했다. 떨어진 옷을 깁고 해진 옷을 빨아대며 틈틈이 학비를 대주었다.
정할머니는 지금은 모두 사회에 진출, 각자 가정을 꾸미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볼 때 『우리사회가 각종 범죄를 예방하는 길은 바로 불우 청소년들을 애정과 용기로 감싸주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77년4월25일 정할머니는 살고 있는 집을 개방, 이웃 개구장이 20여명을 모아 원효유치원을 열었다. 방세와 조카들이 보태주는 용돈이, 유치원 운영비였다. 흙탕에서 뒹굴고 툭하면 싸워 얼굴이 찢기고 하던 개구쟁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무용을 하고 동요를 읽기 시작했다.
그 동안 소문을 듣고 2명의 교사가 자원, 어린이들의 공부와 무용을 가르치고 있다. 금년 2월에 졸업한 꼬마들은 인근 중낭·면목국교 등에 진학, 학교에서 우등생 노릇을 하고 있다.
원효유치원의 넓이는 고작 10평. 입학을 원하는 어린이가 늘고 있으나 현재20여명의 원생들에게도 지금의 시설은 좁은 실정이다.
정할머니는 지난5월부터 평소 안면이 있는 이방자 여사와 서경보·강석주 스님 등을 찾아 휘호와 그림을 기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모은 글과 그림이 80점. 이번 전시회에는 정할머니의 자상한 뜻을 전해들은 국전작가 김영기, 전국회의원 안동준, 전법제처장 윤석오, 여류서예가 한면완, 홍익대교수 홍석창, 사회사업가 한경수씨 등 각계인사 37명이 작품을 내놓았다. <이충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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