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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 아쉬운 일본 "윤병세 유임 땐 최악 시나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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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 12월 7일 도쿄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김장축제에서 이병기 대사의 부인 심재령씨(왼쪽)가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에게 김치를 먹여주고 있다. 이날 이 대사는 일본 식문화인 와쇼쿠(和食)와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걸 언급하며 양국이 서로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포토]

박근혜 정부의 외교엔 ‘일본’이라는 아킬레스건이 있다. 한·일 수교 50주년을 1년 앞둔 양국 관계는 역대 최악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새로 출범한 후 한·일 정상회담은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 역사교과서 문제, 독도 영유권 갈등 등으로 악화일로였다. 외교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일본 문제를 저대로 내버려둘 순 없는데, 도무지 손을 댈 방법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 핵심인 이병기 주일대사가 국정원장 후보자로 발탁됐다. 이 후보자는 지난해 6월 주일대사로 부임한 이후 경색된 국면에서도 유연하고 실용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한·미·일 정상회담을 비롯해 각종 현안에서 외교부 본부와 마찰을 빚어가면서까지 해결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기반으로 청와대와 직접 소통하는 경우도 있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등 일본 고위 인맥도 두텁다. 그런 이 대사가 10일 신임 국정원장 후보자로 떠나게 되자 스가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이 대사는 지난해 6월 취임한 이래 1년 동안 일·한 발전을 위해 대단한 힘을 기울여 온 분”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대변인이 특정 국가의 대사 이·취임과 관련해 언급을 한 건 이례적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11일 “한국의 청와대와 외교부가 대일 강경 노선을 고수하는 가운데 그나마 ‘말이 통하는’ 유일한 루트가 사라졌다”고 했다. 일본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유임되고 이병기 대사가 교체되는 게 일본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일본 외교 고위 관계자)로 여겨왔다. 아베 총리도 이 대사의 거취에 큰 관심을 기울여왔다고 한다.

 반면 윤 장관은 일본에 시종 강경한 입장이었다. 새 정부 초기 일본 방문계획을 취소한 게 대표적이다. 일본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항의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한·일 외교장관이 첫 상견례를 앞두고 일정을 전격 취소한 건 보기 힘든 강수였다.

 일본은 차기 주일대사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일 관계의 향방에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국내에서도 원칙적으론 강경기조를 유지하더라도 그 틀 안에서 유연하게 관계를 다질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의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고 내년이 해묵은 과제들을 해결할 적기인 한·일 수교 50년이라는 점에서다.

 외교부에서 첫손에 꼽는 후보는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일본과장(동북아1과장)과 아태국장을 지내 일본을 잘 알고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1년 이상 보좌해 왔다. 일본 외무성과 정치권에서도 ‘일본통’ 박 수석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낯’을 가리는 일본 특성상 ‘익숙함’은 큰 무기다. 다만 세월호 국면에서 청와대 참모진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야당에서 있을 수 있다는 점이 변수다.

 추규호 전 주영대사의 임명 가능성도 있다. 추 전 대사 역시 주 일본공사 참사관과 주일 공사를 지낸 ‘재팬스쿨’ 출신이다. 이병기 후보자의 외시 1년 후배(외시 9회)로 막역한 사이이기에 이 대사가 구축해놓은 일본 네트워크 등도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영선 전 인도네시아 대사(11회), 신봉길 외교안보연구소장(12회), 조희용 전 캐나다대사(13회), 이혁 주필리핀 대사(13회) 등의 이름도 거론된다. 군대 위안부 문제 등 정치적 해결이 필요한 과제가 많다는 점에서 중량급 정치인의 발탁 가능성도 있다. 한·일 의원연맹회장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황우여 전 대표와 외교부 차관보 출신의 심윤조 새누리당 의원 등이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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