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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미술교육의 허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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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 현대 미술의 고질은 미술교육 그 자체의 부실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흔히 지적한다. 해마다 1천 8백명(그중 순수미술만 5백여명)의 미술인을 대학에서 배출하는데도 막상 작가 기근의 현상이다. 졸업 전 출품으로 끝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그후 한두 번 전람회를 갖고는 도중하차한다. 다시 말하면 눈에 번쩍 띄는 신인이 안나온다는 얘기다.
왜 그런가. 교육이 잘못된 탓이 아닐까? 예술가를 양성하는 전문적 교육이란 극단적으로 천재 교육이겠는데 한국의 미술대학에선 뛰어난 학자도 작가도 배출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외국 대학생의 작품과 국내 대학생의 작품을 한자리(교류 전)에 걸어놓고 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전자를 작가배출을 위한 교육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정서교육을 통한 전인교육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우리 나라 미술교육의 문제점은 근본적으로 제도와 이념의 부재에 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는 것이 너무도 전근대적이고 도제방식이다.
첫째 전문적인 미술교육 기관이 종합대학 안에 들어 있거나 또는 미술 관계학과(공예과·생활미술과 등)가 일반 단과대학 안에 얼버무려있다. 일반 대학의 기능은 연구에 목표가 있으므로 학술적인 교육을 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며 오히려 실기를 강요한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미술학교를 아예 일반 대학에서 분리해 설치한다.
일본의 경우에도 동경미술학교는 본시 동경제대에 포함됐던 것을 일찌기 분리시켰다.
둘째로 구체적인 「커리큘럼」의 빈곤이다. 물론 미국의 미술학교에도 고전적 성격을 띤 학교와 실험적 분위기의 학교가 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실험적 학교에선 한국식의 목탄 석고 「데생」이란 없다.
설사 고전적인 학교라 하더라도 색채를 많이 쓰고 또 배경 등 명암의 단계를 벗어나 공간과 물체로서 파악케 한다. 이론교육에 있어서도 일반대학과 미술대학의 교과내용은 판이하다. 「유럽」의 미술학교에선 교양과목이 아예 없다. 미국에선 「영어」를 가르치되 예술과 관계 있는 것으로 하고 「지리」에서도 지리학 자체가 아니라 미술과 관계 있는 도토·석재 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또 처음부터 「회화과」 「조각과」로 입학하는 것이 아니라 졸업 임박해야 학점에 따라 전공이 결정된다.
말하자면 개개 학생의 종합적 소질과 개성을 개발하는데 미술교육의 목표를 두고있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소질을 찾아 길러주고 표현의 신장을 고무시킨다.
세째는 교수문제다. 한국에서는 작가가 으례 교육자가 된다. 교수라는 직함이 중견작가의 지칭인 것처럼 인식돼있는데, 그러나 외국의 유명한 작가는 결코 교수가 아니다.
더구나 한국의 작가=교수들은 자기 나름의 기법만을 가르친다. 『나를 닮으라』고 한다. 그래야만 국전에도 입선되고 상도 받는다.
심지어 학생의 작품에다 손대주어 전시장의 추문까지 빚어낸다.
그래서 제자를 추종자로 만들고 학교를 종적인 전수 공장화한다. 이 점은 교수와 학생이 함께 경쟁하고 토의하는 구미 미술학교의 분위기와는 전혀 상반되는 점이다.
교수도 열심히 공부해야만 유지되고 동등한 작가라는 입장에서 서로 지도하고 배울 수 없을까.
교육은 철저하게 과학적이어야 한다. 여러 가지 기법과 이론을 비교 검토하는 것이어야 하므로 자기식 만을 주입하는 것은 구시대의 교육방법이다.
또 작가로 교수를 삼기 때문에 재료학이나 미술사학 등을 아주 등한히 해 버린다. 그 교수의 대부분은 일제 아래 교육을 받았거나 그들에게서 같은 방식으로 배운 사람들. 대체로 전통미술을 공부한바 없으므로 가르쳐 줄 여지도 없다. 오늘의 미술대학이 『국적 없는 교육』 『단절된 풍토』라고 비판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미술은 어느 예술보다도 시각적 교육이 필수적인데 요즘 그 흔한 「슬라이드」의 준비도 없다. 거기서 뜬구름 잡기로 배운 사람들이 흩어져나가 중·고교에서 미술을 가르친다.
대학만이 아니라 중·고교의 미술까지 암담한 생각이 든다.
【이종석 기자】

<차례>
(1)범람하는 작품전
(2)미술교육의 허상
(3)여전히 좁은 시상제
(4)화랑가의 향방
(5)기준 없는 그림 값
(6)미술 평가의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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