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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에 밀리는 「모 사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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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8월 23일 동경에는 29년만에 처음으로 두개의 중국대표가 자리를 같이했다. 국제 고「에너지」물리학회의라는 조용한 모임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오늘의 변화하는 중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중공은 8월 9일 자유중국과의 외교관계를 끊어야한다는 지금까지의 일관된 정책을 슬며시 포기한 채 「리비아」와 수교한데 이어 8월 29일에는 대북에 취항중인 태국항공의 북경항로개설을 허가했다.
부수상 등소평은 6일 중공이 대만문제에 대해 그 실체를 인정하는 「일본방식」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말해 종전에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유화태도를 보였다. 「홍콩」에선 중공이 대만∼「홍콩」∼상해를 잇는 항공노선의 개설을 자유중국과 타진 중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홍콩」의 좌파 중국인들은 대만과 대륙간의 교역을 추진하고있다.
이 같은 정책변화는 단기적으로는 지난 6년간 미·중공간의 수교를 가로막아온 대만문제의 해결에 길을 트고 장기적으로는 중공이 대만을 「홍콩」화하려는 포석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중공이 미국과 수교하고 대만을 「홍콩」처럼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소련과 대결하면서 현대화를 추진하는데 일석이조의 원군을 얻게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움직임이야말로 모택동 사후 지난 2년간 중공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 모택동 노선의 핵심이 그대로 집약된 것이다.
12년 전 문화혁명이 시작된 이후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경제발전이 침체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모가 유소기(전 국가주석)등의 실권파로부터 권력을 빼앗기 위해 지불한 대가 치곤 엄청난 희생이 따른 셈이다.
2년 전 모가 죽자 대륙의 상황은 반전의 기미를 보였다. 화국봉·등소평 체제는 지난 10년간 중공을 휩쓴 이념투쟁으로 생긴 손실을 일거에 보상하려는 야심적인 국가재건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실천과 실용을 중시하는 현실감각을 밑바탕으로 해서 현대화건설과 대소투쟁을 대 내외의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삼았다.
상하의 질서가 존중되고 쫓겨났던 「데크노크래트」(기술행정관료)들이 속속 옛 자리로 돌아왔다. 16년만에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보너스」제도와 책임관리제도가 도입됐다. 인민일보는 12일 고위관리가 쓴 것이 분명한 특약논문에서 『생산활동은 물질적 이익을 위한 것이며 계급투쟁과 혁명도 중국적으로는 물질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대담하게 선언했다.
전문가의 대량 양성을 위해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됐고 서방에 2만명의 학생들이 곧 유학을 떠날 채비를 갖추고 외국 석학들도 초빙했다. 외국기술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자력갱생원칙에 묶여 금기돼왔던 외채마저도 끌어다 쓸 방침이다.
화·등 체제가 그와 같은 일들을 밀고 나가자 지금까지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버티고있던 모택동 사상이 최대의 장애요인으로 걸리적거렸다.
이후 화·등 체제는 모 사상을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게릴라」식으로 운용하면서 서서히 탈 모택동 노선을 지향했다.
심지어는 유소기의 심복 팽진(전 북경시장)이 지도층에 다시 등장했다. 따라서 이런 추세가 심화한다면 모 사상은 점점 빛이 바래고 대신에 「수정주의자」 유소기가 웃는 얼굴로 사후 복권될 공산도 없지 않다.【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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