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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면|이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아빠, 이거 잘 핀 꽃이지?』
자고 나면 없어지던 시간이 꽃잎에서 보이다.
자고 나면 없어지고 자고 나면 없어지곤 해서 텅 빈 머리 속.
『아빠, 이거 잘 핀 꽃이지?』
꽃잎은 거울처럼 반짝이다가 하늘이 되고
나는 아이의 손을 잡은 채 빛 속으로 빛 속으로 들어간다.
아픔이 없는
문을 향하여.
◇시의 주변=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야기나 기사를 읽을 때 눈시울이 절로 무거워 진다. 눈물이 헤픈 탓일까
예쁜 꽃들을 보고, 올해로 네 돌을 맞은 딸애가 『아빠, 이거 잘 핀 꽃이지?』하고 자꾸 물었다. 『그래 잘, 핀 꽃이구나』하고 대답하던 중 이 잘 핀 꽃을 뭇보고 세상을 떠난 아이들 생각이 났다.
특히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면서 불치의 병으로 죽은 소녀, H시인의 따님 생각이 찌 잉하게 몰려왔다. 잘 피지도 못하고, 자고 나면 자고 나면 우리는 흙이 될 것이지만 그사이 사이에 얼마만한 아픔은 끼어 있어야 하는가.
◇약력 ▲40년 서울 출생 (본명 김형필) ▲63년 외대 영어과 졸업 ▲64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 당선 ▲68년 제3회 월탄 문학상 수상 ▲시집 『바람 분다』 (67년) 『소등』 (68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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