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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출신 노간호부|나병환자 돌보기 23년-영주군 다미안 피부과 데리사 원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천형을 받은 후예들이라고 가까이 서기조차 싫어하는 문둥병환자를 23년째 돌보고 있는 외국인 할머니가 있다.
경북 영주군 영주읍 상망리259의1「다미안」피부과의원 원장「캄비에·데리사」(62)씨.
그가 우리나라 나병환자들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6·25때 간호장교로 종군한데서부터.
6년 전 영주읍 한적한 곳에 병원을 짓고 본격적인 나병퇴치를 시작했다.
환갑을 넘긴 나이 이면서도 이른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먼저 입원환자 방을 방문, 병세를 점검한다. 이것이 그가 나병과 싸우는 일과의 첫출발.
찌그러진 얼굴의 환자들과 일일이 상담하기도 하고 하루속히 완쾌되기를 비는 기도는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데리사」씨는 안동·영주·봉화·주천 등 l시4개군 2천여명의 나환자와 그 가족들로부터 나병을 퇴치하려고 하고 있다.
매월 관할지역 보건소에 나가 등록된 환자를 보살피는 외에 연간 4∼5회씩 7개 정착촌을 순회하면서 진료한다. 「데리사」씨를 돕는 의료진은 외과과장 고경문씨(45·전문의)와 「마거리트」양(35), 「모니카」양(34)등 2명의 수녀들.
「다미안」피부과의원은 나환자진료 외에 매주 2일동안은 일반인들의 진료를 돕기도 한다. 일반인 환자를 받는 것은 숨은 환자를 찾기 위한 것인데 월3∼4명의 나환자를 찾아내 진료해주고 있다.
입원환자의 침식까지 거의 무료인 이 병원은 일반 외래환자들에게서 약간의 진료비를 받는 수입과 연간 10만「달러」를 「다미안」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운영한다.
「데리사」씨는 22세 때 「벨기에」「브뤼셀」대학 간호과를 졸업, 2차대전이 터지자 간호장교로 임관, 「유럽」전선에서 「유엔」군을 도왔고 6·25때는 대위로 활약했다.
1959년부터 「다미안」재단이 벌이는 구라 사업에 간호원으로서 활약을 시작한 그는 『아름답고 인정 많은 한국사람들과 한평생 같이 살고 싶어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국서 구라 사업을 펴게 된 동기를 말했다.
75년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좀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환자 돌보기에 여전히 정열을 쏟고있는 「데리사」씨는 『앞으로 비좁은 병실을 더 늘려 보다 불편 없고 폭넓은 구라 사업을 펴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했다. <영주=이기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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