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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맵고 짜고 단맛 유혹 … 당신 미각은 안녕하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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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수정 기자

현대인의 미각이 혹사당하고 있다. 달고 맵고 짠맛에 길들여져 자극적인 음식을 탐닉한다. 문제는 미각이 건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신선한 식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지 못한 채 편식·과식·폭식을 반복하는 사이 미각뿐 아니라 건강까지 망가진다.

산해진미를 맛보는 즐거움도 미각이 망가지면 소용없다. 다행히 미각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길들일 수 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프랑스의 미식문화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에서 아이들의 미각 발달 교육을 적극 실시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신체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인 미각의 중요성과 관리법을 짚어본다.

미각의 건강학

미각 감퇴, 신체 질병 신호일 수 있어

미각 감퇴는 신체 이상을 예고하는 주요 신호다. 미각은 미뢰(혀에서 맛을 느끼는 감각세포)·후각·뇌가 만들어내는 협연의 결과다. 이 중 한 가지라도 이상이 있으면 맛을 느끼는 데 문제가 생긴다. 서울대 치과병원 구강내과 고홍섭 교수는 “갑자기 음식의 맛을 제대로 못 느낀다면 질병이 원인인 미각장애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심숙현(50·여·서울 종로구)씨는 주부 경력 20년의 베테랑급 요리 실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남편과 딸에게 ‘반찬이 맛이 없다’는 핀잔을 들었다.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쳐 내놨는데 맵거나 짜서 간이 잘 안 맞는다는 거였다. 심씨는 “요즘 입안이 화끈거리고,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다”며 “나이가 들면 으레 입맛이 떨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충치 치료를 받으러 간 치과에서 뜻밖에도 ‘구강건조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고홍섭 교수는 “침이 부족해지는 구강건조증·쇼그렌증후군·당뇨병이 있으면 음식물이 미뢰를 충분히 자극하지 못해 맛을 덜 느낀다”며 “물을 많이 마시고 껌을 씹거나 신 음식 먹는 것이 침 분비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무중력에서 생활하는 우주인은 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 피가 머리로 쏠리면서 코와 목이 붓고 후각이 감퇴돼서다. 알레르기성 비염·감기에 걸렸을 때 맛을 못 느끼는 것과 같다. 이외에도 미뢰의 필수영양소인 아연·엽산이 부족하거나 갑상선기능저하증이 미각 감퇴의 원인일 수 있다. 박민수(『미각교정다이어트』 저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질병이 있어 미각이 둔화된 지 모른 채 계속 자극적인 맛에 노출되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일정 수준의 맛에는 만족을 못하는 미각 중독이 오기 쉽다”고 말했다.

자극적인 맛, 끊임없이 확대·재생산

질병이 원인이 아닌데도 미각이 둔해지고 자극적인 맛을 좇는 미각장애도 있다. 박민수 전문의는 “현대인은 질병이 원인인 미각장애보다 특정 맛을 탐닉하고, 다른 음식에는 만족을 못하는 기능적 미각장애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음식이 혀에 닿으면 감각신경을 통해 뇌에 맛이 전달된다. 뇌에서는 음식의 종류와 맛을 지각해 머릿속에 입력한다. 특정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가 연상되도록 학습하는 것이다. 레몬을 생각했을 때 침이 고이는 것과 같다. 박민수 전문의는 “이렇게 형성된 미각은 기존 미각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경험이 없는 이상 계속 유지된다”고 말했다.

미각중독의 원인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박민선 교수는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지면서 특정 맛에 집착한다”며 “해당 음식이 일정 기간 제공되지 않으면 불쾌해지고, 스트레스가 뒤따른다”고 말했다. 고대 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김선미 교수는 “미각세포가 강한 자극을 받아 뇌의 신경세포에 전달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중독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둔한 미각, 과식·만성질환 원인

미각장애는 건강에 직접적인 위해 요인이 된다. 우선 단맛·짠맛·매운맛에 길들어지면 과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박민선 교수는 “미각이 둔해지면 더 강한 맛을 느끼거나 맛을 중화하기 위해 음식을 더 먹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더 달고, 짜고, 맵게 먹는 것은 몸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까. 박민수 전문의는 “단맛은 체내 혈당 수치를 요동치게 해 폭식을 부른다”고 말했다.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에 부담을 줘 당뇨병으로 이어진다.

지나친 소금 섭취는 고혈압·심장병·콩팥병 같은 만성질환의 주요 원인이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5000㎎(소금 12.5g)으로 세계보건기구(WHO) 권고량(2000㎎, 소금 5g)의 2.5배다. 단맛처럼 짠맛 역시 금단증상이 있다. 미국 아이오와대 통합생리학과 킴 존슨 박사에 따르면 소금이 많이 들어간 사료를 쥐에게 먹이다 양을 줄이자 쥐의 활동량이 줄고 무기력해졌다.

박민수 전문의는 “짠맛의 각성 효과가 금단 증상을 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운맛은 어떨까.매운맛은 엄밀히 말하면 통증에 의한 ‘통각’이다. 박민수 전문의는 “뇌에서 매운 통증을 보상하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매운맛도 중독성이 있어 뇌에서 더 많은 엔도르핀을 갈망하고, 우울할 때 습관적으로 매운맛 음식을 찾게 된다.

식사장애는 조금만 노력해도 쉽게 개선할 수 있다. 지나친 매운맛은 위장에 부담을 주고, 살까지 찌게 한다. 박민수 전문의는 “물을 충분히 마시면 매운맛에 민감해지므로 의존도를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권했다.

또 단맛에 길든 미각을 바꾸려면 당 지수가 낮은 음식을 먹고, 식사할 때 섬유질 많은 채소를 먼저 먹는다. 짠맛을 바꾸려면 젓가락으로 먹는 버릇을 들이면 좋다. 나트륨 덩어리인 국물을 덜 먹을 수 있어서다.

요리할 때 소금의 절대량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박민선 교수는 “병원에서 저염식을 했을 때 환자가 처음에는 적응을 잘 못하지만 나중에는 짠맛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져 싱거운 음식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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