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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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름방학-. 지난 몇달 동안의 학교생활과는 다른 생활주기가 시작되었다. 학교생활이 『제도 속에서의 학습』이라면 방학은 『자연·가정생활 속에서의 학습』이다.
그 어느 것이나 몸과 마음을 키우는 배움의 길임에는 다룰 바가 없다. 그러나 방학은 방학만의 고유한 특징과 보람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선 굳이 방학을 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방학은 우선 휴식과 놀이와 자유의 기간이 돼야 한다. 어떤 판에 박은 듯한 규칙을 벗어나 자유롭게 쉬고 놀고 즐기게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청소년들의 심신성장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양식이다.
사람들은 흔히 방학은 학교공부의 연장이라고 말하면서, 방학 동안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숙제하라고 야단이다. 그러나 이건 그리 썩 좋은 교육방법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방학 동안엔 되도록 힘겨운 「공부」의 중압감을 벗어나 넓은 자연과 따뜻한 우정 속에서 마음껏 뛰놀게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도 더 바람직하다.
교육이란 교과서 공부 속에만 있는 것도 아니요, 공부나 배움이라는 것도 지식공부만이 전부가 아닐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방학동안의 『쉬고 노는 것』이 주제 없는 한일월이 되거나 무절제한 유흥이 돼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마음껏 놀고 마음껏 쉬되 그것은 반드시 보람있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되며 그러기 위해선 뚜렷한 주제의식이 있어야만 한다. 건강이면 건강, 캠핑이면 캠핑, 정서면 정서, 또는 사색이면 사색, 무엇이건 일정한 「테마」를 세워 놓고 즐기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배회하거나 게으름만 피우다가는 방학은 「권태의 계절」 「피로의 계절」 「퇴보의 계절」로 허비되고 만다. 지난 2월 상주의 어떤 교사 둘이서 조사한 대로, 『방학이 지루하다』고 응답한 학생이 50%나 됐다면 그런 방학은 안했더니만 못한 것이다.
이것은 어린이들 자신보다도 부모들의 책임이 더 크다 할 것이다. 방학을 맞은 어린이에게 적당한 생활주제를 설정해 주고, 그 실천을 위한 프로그램과 여건을 마련해 주는 일은 바로 부모들의 소임인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부모들은 『돈이 없어서 그렇게 못해준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녀들의 여가를 보람있게 선용케 하는 일이 반드시 돈을 10여 만원씩 써가면서 해변학교나 수영강습에 보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곁들여, 여름방학 초반에 특히 강조해 두고싶은 것은, 이 기간이 다른 무엇보다도 따뜻한 「사귐」의 계절이 됐으면 하는 것이다.
자연과 사귀고, 벗과 사귀고, 가족이웃·공동체와 대화하는 친교의 계절.
이야말로 경쟁사회의 결락부분을 메우는 산 인간수업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귐을 통해 청소년들은 자연과 이웃을 경쟁이나 승부의 적수로서가 아니라 외경과 연대의 상대로서 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부모들도 이 기간에만은 『첫째를 해라』 『남보다 위에 서라』하는 것보다, 『바르게 살자』 『인정을 주고받자』하는 말을 더 많이 들려 줬으면 좋겠다.
이 귀중한 가정교육을 위해 여름방학보다 더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어린이들의 방학을 맞은 모든 부모·교사·지역사회 인사들의 주의깊은 배려를 당부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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