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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이 가전제품 수리 척척-경주시 황오동 이영선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꽂을 가꾸고 고장난 전기제품을 척척 수리해 내는 맹인이 화제가 되고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이영선씨(36·경주시 황오동346)는 아름다운 꽃도, 복잡한 전기제품도 본 적이 없지만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 꽃의 종류와 개화정도를 가려낼 뿐 아니라 고장났던 전축이나 「라디오」도 제소리를 찾게된다.
9세때 이미 점술을 익혀 「꼬마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이씨는 손재주가 유달리 뛰어났다.
외톨이가 되어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어린 때는 장난감을 뜯고 다시 맞추는 놀이를 했다. 이 놀이가 차차 발전하여 간단한 농기계 고장을 수리할 수 있게 됐다.
이씨가 전기제품을 수리하는 기술을 익힌 것은 58년 이후.
경주시 노서동에서 친구가 경영하는 전기제품상을 드나들면서 고장난 전축·「라디오」등을 만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씨의 예민한 손가락은 「모터」·「콘덴서」와 복잡하게 얽힌 회로를 더듬어 이제는 4백여개의 전축부속을 흐트러 놓아도 제자리에 끼워 맞출 수 있게됐다.
전기제품을 만져본지 불과 2년만에 「라디오」·전축·선풍기 등은 어떤 고장이라도 1시간정도면 모두 고쳐낸다.
지난 18년 동안 이씨가 고쳐낸 것은 전축·「라디오」외에는 전화기·전기다리미·재봉틀·전기이발기 등 10여종에 걸쳐 1천5백여대에 달한다.
이 때문에 이웃 전기제품수리가게에서는 수입에 타격을 받는다며 울상을 짓기도 한다.
이씨가 생계를 잇는 것은 원예기술. 50여종의 꽃을 가꾸어 매달 6만여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꽃잎을 일일이 만져 꽃봉오리가 알맞을 때 잘라내어 시장에 내보내는 이씨는 『꽃의 아름다움을 향기로 느낀다』면서 작은 소원하나가 있다고 부끄러운 듯이 말한다.
그것은 수리연습을 위해 고장난 「텔레비전」 한대를 구입하는 것. 지금까지 「텔레비전」을 만질 기회가 없어 기술을 익히지 못한 것을 풀고 싶다는 것이었다. 【경주=김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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