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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의 영주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일본의 한 지방재판소는 협정영주권을 가진 재일동포가 재입국 허가 기간을 넘겼다는 이유로 영주권 자체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일개 지방재판소의 판결이라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과는 거리가 멀다고는 하나, 양식을 결한 판결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우리는 재입국 허가기간을 반년이상이나 넘긴 문제의 재일동포 조씨의 일본 국내법 위반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조씨 자신의 범법에 대해서는 의당 일본 국내법에 의해 제재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법률위반에 따른 형사처벌과 병행해 일본정부가 협정영주권 소지자에게 강제퇴거명령을 내리고 이번에 지방재판소가 영주권 자체의 효력을 상실시켜 이를 뒷받침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똑같이 일본에 살고 있다고 해도 65만 재일동포의 일본 영주자격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협정영주권·전전 일본 국적 소지자·일반영주권이 바로 그것이다.
협정영주권은 한·일간의 『재일 한국민의 법적 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에 따라 71년 1월 16일까지 영주권을 신청한 36만 7천 2백 62명의 동포와 그 후에 출생한 그들의 직계비속으로서 생후 60일 안에 신청한 사람이 누리는 영주권이다.
그리고 조총련계 동포를 포함해서 협정 영주권 신청을 하지 않은 28만여명 중 다수가 「전전 일본 국적 소지자」란 자격으로, 2차대전후에 일본에 간 극소수가 일정 거주기간과 요건을 갖춰 일반 영주권자로서 일본에 살고 있다.
이중 협정영주권은 다른 두 가지 경우와는 달리 『법적 지위협정』 제3조에 의해 강제퇴거의 경우가 4가지범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즉 내란 및 외환에 관한 죄, 국교에 관한 죄, 마약에 관한 죄와 그 밖에 범죄로 7년을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진 사람만이 강제퇴거 대상이다.
그런데 이번 조씨의 경우는 이 4가지 범주의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 제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 일본측은 출입국관리법 위반을 이유로 우선 조씨의 협정영주권을 상실시켜 법적 지위 협정과의 관련을 뗀 다음 강제 퇴거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말하자면 법적 지위 협정에 직접 위배되지는 않는 구실을 우선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어떤 외양을 갖추었든 이는 교묘한 탈법행위에 불과하다.
만일 이런 식으로 법적 지위 협정이 운영된다면 이 협정 제3조의 강제퇴거 제한규정은 사문화 할 수 밖 에 없다.
재일 한국인이 일본에 살게 된 역사적 배경을 전혀 무시하고 단순히 『남의 나라에 사는 외국인』으로 생각하는데서 이런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재일동포가 일본에 살게 된 데는 일반 외국인과는 판이한 역사적 사연이 얽혀 있다. 이들은 순전히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정책 때문에 일본에 살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본의 전쟁수행이라는 순전히 일본의 필요에 의해 징용·공출 또는 계약형식으로 일본에 끌려갔으며, 더구나 그 때에는 일본국적이 지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따라서 참정권 같은 국민 고유의 권리를 제외하고는 일본 국민과 똑같은 권리를 보장해 줘야할 역사적 책임이 일본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역사적 배경과 한·일 협정의 명문규정을 모두 무시한 이번의 행정조치와 판결은 마땅히 파기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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