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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기만 한 축구장 사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춘계실업축구연맹전이 장마 속에 강행되어 결승전을 한번 연기하더니 끝내 지난 8일에야 겨우 끝낼 수 있었다.
야구 등 다른 옥외「스포츠」는 다 쉬는 통에 유독 실업축구경기만이 진흙탕 속에서 강행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마치 한국축구의 현실을 그대로 보는 듯 해서 서글픈 감정마저 든다.
상업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2가지 측면이 있어 그 균형이 잘 잡혀야 하듯이「스포츠」에도 기술·장비·시설, 그리고 선수·심판·관중이라는 2가지 측면의 균형이 잡히지 않으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20년 전만 해도 농구나 배구도 옥외에서 경기를 했다.
그런데 국제적인 추세로 실내경기로 바뀜에 따라 수많은 실내체육관이 생겼고 태릉선수촌에도 전용체육관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축구의 경우는 어떠한가!
7백만 인구를 가진 수도 서울에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운동장이 2개(그것도 축구전용구장이 아님)밖에 없다. 잔디구장인 서울운동장은 국제경기를 내세워 관광용 구실밖에 안되며 효창운동장은 교통이 불편한데다가 봄가을에는 먼지로 목이 따갑고 여름에는 비만 오면 논두렁이 되는데 그나마도 다른 종목과 쪼개어 쓰는 한심한 실정이다.
축구가 근래 침체된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으나 제일 큰 이유로 운동장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나이 어린 국민학교나 중학교선수들이 잔디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황홀한 기분을 맛보게 하지는 못할망정 현재 대표선수를 키우고있는 실업「팀」들이 지난 3월 대회를 끝맺지 못했고 지난 26일부터 시작된 춘계연맹전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계속 내린 비로 운동장이 아닌 진흙 밭에서 관중도 없이 힘의 아귀다툼을 벌였으니 기술의 향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몽상이 아닐 수 없다.
2차 대전에서 참패한 서독이 기적을 이룬 배경에「골든·플랜」이란 장기국민체육진흥책이 뒷받침되었고, 1960년대에 미국은「그라운드·무브먼트」(운동장 만들기 운동)를 벌여 시설의 완비를 서둘렀었다.
이에 비하면 우리 축구는『너무하다』할 정도로 시설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올림픽」이나「월드·컵」의 예선전이 닥치면 국민들의 기대는 크다.
그리고 그 기대는 무조건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방향으로 비약하기도 한다.
올해의 축구행사로는 12일부터「메르데카」배대회가 열리고 9월의「박스·컵」대회는 사상 처음으로 19개국이라는 많은「팀」들이 출전해 10만「달러」에 가까운 상금을 놓고 격전을 벌일 것이라는 소식이다.
그밖에 12월에는 남북대결이 예상되는「아시아」경기대회도 개최된다.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 한국축구가 이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지만 이에 못지 않게 갈구하는 바는 시설의 보완책이다.
뒤늦은 느낌이 있지만 서울시가 남서울대운동장을 이미 착수했고 올해 들어 축구협회가 오랜 숙원인 전용구장의 별도 건립을 위해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는 소식이니 그런 대로 반갑다.
아무쪼록 이런 시설이 완비되어 적어도 우리선수들이 진흙탕에서 아귀다툼을 벌이는 일만이라도 면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장경환 (대한축구협회 이사·TBC-TV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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