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 기준 바꾸니 … 못 보던 펀드 보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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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너지(nudge)효과. ‘옆구리를 슬쩍 찌르듯(nudge)’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 방법으로 행동을 변화시키는 걸 뜻하는 말이다. 바로 이 너지효과가 펀드 시장을 바꾸고 있다. 지난 4월 말 문을 연 펀드온라인코리아 얘기다. 개장 이후 판매 상위 펀드를 뽑아보니, 장기 수익률은 좋지만 좀처럼 접하기 힘들던 비인기 펀드가 대거 진입했다.

 펀드온라인코리아는 증권사나 은행 같은 판매사를 거치지 않고 투자자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펀드를 직접 살 수 있는 온라인 펀드 수퍼마켓이다. 판매사가 챙기는 수수료가 기존의 3분의 1 수준이다 보니 한 달 여 만에 1만여 개 계좌가 개설되고 약 277억원이 몰릴 정도로 인기다. 본지와 펀드평가사 제로인이 펀드 직구(직접구매)족이 많이 산 펀드 20개를 조사한 결과 기존 판매채널에선 홀대받던 펀드가 8개나 포함됐다. KB메나·흥국멀티플레이·한투밸류10년투자어린이·동양베트남적립식펀드 등이 그 주인공이다.

 비인기 펀드들이 판매 상위 20위 안에 대거 진입할 수 있었던 비결은 수익률 순위 선정 방식에 있다. 펀드온라인코리아 홈페이지는 3년 수익률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 펀드를 보여준다. 동양베트남적립식펀드와 KB메나펀드는 전체 유형에서 1·2위를, 한투밸류10년투자어린이펀드는 주식형에서 1위를, 흥국멀티플레이펀드는 채권형에서 1위를 차지했다. 수익률이 좋은데도 기존 판매채널에서 이들 펀드를 보기 어려웠던 건 판매사들이 3개월 수익률을 기준으로 펀드를 추천하기 때문이다. 각 증권사 펀드 온라인 판매 사이트 역시 3개월 기준으로 펀드 순위를 매기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고객들이 시장 상황을 봐가며 단기 투자하다 보니 3개월 혹은 6개월 수익률을 기준으로 펀드를 추천하는 게 업계 불문율로 자리 잡았다”며 “각 증권사의 추천 펀드 역시 3개월 단위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행에도 불구하고 펀드코리아 측이 3년 수익률을 기준으로 펀드 순위를 매긴 것은 장기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다. 민주영 펀드온라인코리아 온라인전략팀 차장은 “3년 이상 장기 투자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정책”이라며 “처음엔 5년 수익률을 기준으로 하려 했으나 설정된 지 5년이 안 된 펀드가 많아 3년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말했다. 펀드온라인코리아 측은 3년 이상 투자 시 후취수수료(0.15%)도 면제해주고 있다.

 펀드온라인코리아의 실험이 펀드 시장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은 가치주 펀드를 봐도 알 수 있다. 가치주 펀드 3인방으로 불리는 KB밸류포커스와 한투밸류10년투자펀드의 경우 지난 4월 말 이후 한 달여 사이 각각 1215억원과 143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반면 펀드온라인코리아 전용 클래스에는 각각 3억1000만원과 12억8000만원이 유입됐다. KB밸류포커스를 운용하는 최웅필 KB운용 상무는 “최근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돌파하면서 판매사에서 고객들에게 차익을 실현하라며 환매를 권유해 자금이 빠져나갔다”며 “장기 수익률이 좋은 펀드야말로 추천해야 할 투자처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2008년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판매사를 거치지 않는 직접 판매 방식을 고수해온 에셋플러스운용의 대표 펀드 3개(코리아·글로벌·차이나리치투게더)가 상위에 랭크된 것 역시 펀드온라인코리아의 너지효과를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펀드 추천 방식이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단기 운용 목적으로 가입한 투자자는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흥국보다 발전 단계가 뒤처진 일명 프런티어마켓에 투자하는 KB메나펀드가 판매 상위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 같은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프런티어마켓은 시장 규모가 작아 작은 충격에도 증시가 큰 폭으로 오르고 내려 단기 투자 시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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