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떠나 남북의 민생에 역점|박 대통령의 특별 담화가 뜻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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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해설>
6·23 선언 5주년에 나온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담화는 70년의 8·15 평화 통일 선언, 7·4 남북 공동 성명, 6·23 평화 통일 외교 선언 등에 이어 통일을 향한 정부의 적극 자세를 보여준 것이다.
남북간 경제 협력 촉진을 위한 협의 기구를 설치하자는 이번 제의는 지금까지 나온 정책과는 달리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라는 점에서 종래의 입장에서 진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최근에 연방제 등의 실현 불가능한 제안을 내놓고 대미 직접 접촉 등을 시도하면서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남북의 민생과 직접 관련된 경제 분야의 협력을 통해 상호의 불신 해소→민족의 동질성 회복→평화 통일의 분위기 조성으로 나가자는 이번 제안의 내용은 북의 그것과는 달리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30여년 단절된 남북 관계에서 손쉽고 우선 가능한 분야의 협력부터 시도하는 것이 정상적인 순서가 아닐 수 없으며 이번 제의는 그런 점에서 이산가족 재결합을 위한 적십자 회담 제의와 바탕을 같이하고 있다. 남북의 민생에 함께 도움될 경제적 보완 관계를 발견, 확대해 나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컨대 남의 우수한 각종 공산품과 북의 풍부한 무연탄·철광석의 교환이라든가 남의 풍부한 식량과 북의 다른 자원의 교류라는 문제는 쉽게 생각할 수 있으며 이런 교류가 이뤄진다면 남북에 함께 유익할 수 있다.
또 남북의 관광 자원을 공동 개발할 수만 있다면 남북이 따로따로 관광 산업을 육성하는 노력에 비해 훨씬 큰 대가를 얻을 수도 있다.
남북의 체제·이념의 차이를 떠나 남북 민생에 실질적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이런 교류는 민족적 차원에서 추진돼야 할 일이다.
교류를 담당할 실질 기구로 민간 경제 협력 기구를 두자는 것은 정치적 대화를 북이 기피하는 현실을 감안, 우선 실현 가능한 분야에서부터 일을 시작하자는 뜻으로 보이며, 필요할 경우 관계 각료 회의의 개최 용의는 민간 차원에서 하기 어려운 문제가 나올 경우 정부 차원에서도 협의할 용의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특정한 대화 창구를 고집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방법으로든 남북간의 대화를 다시 트려는 정부의 신축성 있는 자세를 보여주는 일이다.
이번 제안은 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호혜 협조를 내용으로 한 6·23 평화 통일 외교 정책 선언의 정신에서 나온 구체적 협력 방안의 제시다.
박 대통령이 밝힌 기술 협력·자본 협력의 방법은 쌍방이 참여한 협의 기구에서 논의, 결정될 일이지만 남에 필요한 북의 기술이 있다면 이를 받아들이되 북에 필요한 남의 기술·상품도 제공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되며 필요하다고 합의되면 남이 북에 차관 제공도 할 수가 있고 우리 기술진이 북의 공장 건설에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일이다.
북한 당국이 이번 제안을 수락할지 여부는 두고 볼 일이다.
체제와 관련 없이 민족의 민생 문제·복지 향상을 하자는 제의를 북이 거부한다면 그들이 평소에 고창 해온 민족 대 단합이니 평화 통일 추구니 하는 정책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런 구호 아래 실은 무력 통일을 지향한다는 국제적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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