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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 외치며 권력만 탐하는 정치 ‘깡패’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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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호 24면

선거가 코앞이다. 과거 선거운동이 널찍한 광장에 사람을 모아놓고 적당히 분위기를 띄웠다면, 이제는 멀티미디어가 대중의 감정을 교묘히 건드리고, SNS가 물샐틈없이 대중 하나하나를 찾아간다. 민중을 선동하는 언어의 힘이 한층 더 정교하고 강력해진 셈이다. 하지만 말장난으로 상대방 죽이기에 올인하다 결국 그 화살에 자기가 맞곤 하는 걸 보면 이런 코미디가 없다. 그렇게까지 해서 남의 위에 올라서려는 심리는 뭘까. 이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해묵은 기원전 로마시대부터 그랬단다. 셰익스피어의 정치비극 ‘줄리어스 시저’가 코미디가 된 배경이다.

연극 ‘줄리어스 시저’ 5월 21일~6월 15일 명동예술극장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기념해 명동예술극장이 선택한 연극 ‘줄리어스 시저’(1599)는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코리올레이너스’와 함께 셰익스피어가 로마를 배경으로 쓴 네 작품 중 하나로, 그중 최고의 완성도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배신의 상징이 된 유명한 대사 “브루터스, 너마저…”도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국내 공연사례가 많지 않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치고 연구도 미미한 편이라 그 동시대적 해석이 더욱 주목되는 작품이다. 김광보 연출은 원작 속 여자들을 과감히 없애고 16명의 남자배우로만 무대를 구성해 첨예한 정치적 대립을 압축적이고도 역동적으로 그려냈다.

문제는 ‘시저리즘’이다. 공화정을 해체하고 로마의 유일한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품은 시저가 살해된다. 오랜 부하 브루터스가 시저를 시기해 암살을 모의하던 카시어스 일당의 부추김에 넘어가 역모를 주도한 것. 그는 ‘시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해서’라는 논리적인 연설로 민중을 설득하지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통 크게 허락한 시저의 심복 안토니의 추모 연설에 여론은 순식간에 뒤집힌다. 가슴을 파고드는 안토니의 감동적 추모 연설이 민중을 선동하자 부르터스와 카시어스는 수세에 몰리고, 안토니 일파와 교전을 앞두고 불안에 떨다 둘 다 자결하고 만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분명 거룩한 혁명을 도모한 주인공이 실패하자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비극이지만, 김광보 연출의 무대는 비극을 가장한 블랙 코미디로 그려진다. ‘이 연극의 전제는 실패한 혁명이다. 혁명 공모자들 또한 그들이 죽인 시저와 같은 모습이며, 전쟁의 끝에는 승패가 아닌 스스로 파멸하는 한심함이 있을 뿐’이라고 기획의도를 밝힌 김 연출은 고도의 은유로 정치라는 이름의 치졸한 욕망을 비웃는다.

철망으로 뒤덮인 황량한 철골구조물 안팎을 무리 지어 몰려다니는 16명의 사내는 입으론 정치를 논하지만 그 겉모습과 행동은 조직폭력배들의 권력다툼에 다름 아니다. 무대 위엔 시종일관 비장한 분위기가 감돌지만, 그 묘한 괴리감이 비극을 객석에 전달하지 않는다. 멀쩡해 보이던 브루터스와 카시어스가 중반 이후 본성을 드러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장면들이 이어진다. 대의를 위한 거룩한 행동을 부르짖던 그들이 결국 대중의 꽁무니만 바라보며 권력을 탐하는 정치깡패였을 뿐이며, 그런 졸렬함은 죽어도 죽지 않고 끝없이 되풀이됨을 온몸으로 웅변하는 대목에 이르면 배꼽을 잡을 수밖에 없다.

‘줄리어스 시저’는 제목일 뿐, 극의 중심은 브루터스와 안토니의 엇갈린 운명이다. 브루터스는 고결한 성품으로 존경받는 정치가였지만, 질투심 많고 교만한 카시어스가 ‘브루터스의 거울이 되겠다’고 한 서두의 암시처럼 그 또한 자신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시키려는 ‘시저리즘’을 몸소 실천하며 독재자의 거울이 됐다. 주변의 아첨에 흔들려 시저를 공격하고, 역모에 성공하자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독단으로 화를 자초했다. 정치적 기교가 부족했던 브루터스에 비해 수완이 뛰어난 기회주의자 안토니는 광장이라는 무대에 오른 탁월한 연기자였다. 야심가 시저를 살해한 대의명분을 호소한 브루터스를 존중하는 척 시저를 옹호하는 교묘한 화법으로 군중의 분노에 불을 지핀다. 저들의 운명을 가른 건 ‘민중을 움직이는 언어의 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얄팍한 언어의 힘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셰익스피어가 후속작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도 그리고 있듯, ‘언어의 승리자’ 안토니 역시 결국 시저의 양아들 옥타비어스 시저의 시저리즘에 굴복할 운명이었다. 애초에 ‘시저리즘’을 저어해 혁명을 일으킨 브루터스의 ‘고결한’ 의도부터 틀렸다. 브루터스 스스로 시저리즘의 노예가 됐고, 강력한 지도자를 잃은 로마 공화정은 저마다의 시저리즘 속에 내란을 거듭하다 마침내 제국 시대의 개막을 보게 됐으니 말이다. 역사는 시저가 죽었어도 ‘시저리즘’만은 영원함을 이야기하며, 그 역사는 무수히 되풀이된다. 이 연극의 제목이 ‘줄리어스 시저’이며, 시저의 망령이 오늘도 수많은 브루터스와 안토니 속에 여전히 건재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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