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같은 미술 이야기, 속 시원히 풀어주는 나침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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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호 26면

저자: 이진숙 출판사: 민음사 가격: 2만5000원

제 아무리 전문가라도 책을 추천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상대의 관심사에 맞춰 딱딱 답을 내놓기란 보통 내공으로는 어렵다. 한데 종류도 깊이도 제각각인 미술서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그것도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일 만큼 엄선한 미술책이라니. 마치 시험 족보인 냥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위대한 미술책』

이 책은 미술 큐레이터이자 비평가인 저자가 그간 중앙SUNDAY S매거진에 연재했던 ‘이진숙의 아트북 깊이 읽기’를 보강해 내놓은 신간이다. 지면에 못다 한 이야기들을 보태 동서고금의 위대한 미술책 62권을 골랐다. 만약 이들의 서평을 한 권씩 나열했다면 꽤 지루할 만한 규모지만 일목요연하고 입체적인 구성이 이를 막았다. 일단 다섯 개 분야로 카테고리를 나눴다. 작가 이야기부터 서양 미술사, 한국 미술사, 미술 이론, 미술 시장과 컬렉터까지가 그것인데 “미술의 생태계를 포괄하는 범주”라는 게 이유다. 그러고는 또 한 번 소주제를 만들어 책들을 짝짓기했다. 가령 미술 이론 카테고리 중 ‘키치 편’에선 『키치, 어떻게 이해할까?』『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키치로 현대미술론을 횡단하기』를 한꺼번에 짚어주는 식이다.

서술 역시 북 리뷰의 맹점을 노련하게 피해 갔다. 충실한 내용 설명에서 한 발을 빼는 대신 저자는 자신의 관점을 녹여 화두를 던지는 데 무게를 뒀다. 현장성과 동시대성이 묻어나는 얘기들인데, 이와 관련해 서문에 그 속내가 나와 있다. “미술사 강의를 하면서, 또 미술 현장에서 일하면서 모두 궁금해하는 문제들,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들을 추리면서 공부에 현장감을 더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예를 들어보자. 반 고흐가 ‘가난 속에 짧은 생을 마감한 천재 예술가’로 신화화된 배경은 뭘까. 또 고갱에게도 질문이 따른다. 그의 작품에 수차례 나오는 식민지 타히티는 원초적 본능이 살아 숨 쉬는 ‘에덴 동산’이었을까. 그곳의 여인들은 때 묻지 않은 건강미를 지녔을까.

저자는 여기에 답할 책을 들이민다. 귀를 자르고 정신 병원에 입원했던 그의 극적 스토리로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고 ‘미치광이’라는 수식어까지 하나 더 붙여 놨던『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고갱의 작품은 식민주의와 관광주의의 영향 하에서 생산됐다”고 반박하는 『고갱이 타히티로 간 숨은 이유』가 그것이다.

저자가 힘주어 얘기한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한국 미술사가 아니었나 싶다. 서양 미술사와 엇비슷하게 할애한 페이지 수가 이를 말해준다. 미술사 하면 서양을 먼저 떠올리는 우리네 인식을 뒤집듯 말이다. 저자 역시 외국 문학과 외국 미술사를 전공하며 한국 미술의 뿌리를 간과해 왔다는 고백을 전한다. 그러면서 수많은 형용사로 한국적 미를 전하는『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전통 회화는 우상좌하(右上左下)의 원칙대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에 대한 극찬을 늘어 놓는다.

마지막 페이지로 다다를 때까지 책은 꽤 친절하다. 길을 잃지 않도록 내용이 일목요연하고, 초보자도 포기하지 않도록 적당한 숨고르기를 한다. 순간순간마다 저자의 개인적 의견과 평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데다 중간중간 글에 예시됐던 작품들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책 속에 언급된 책들을 실제 읽어보겠다는 마음이 불쑥 생겨날 정도다.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북 가이드’라는 이 책의 역할을 실로 다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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