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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민심 창구 …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물 배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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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호 04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민정’은 과거엔 ‘民情’으로 썼지만 요즘은 한글로만 쓴다. ‘民情’의 사전적 의미는 ‘백성의 사정과 생활 형편’이다. 이처럼 본래 민정수석의 주된 역할은 민심과 여론 동향을 적기에 포착해 국정에 반영하는 일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어떤 곳인가

하지만 활동 영역은 포괄적이다. 이 때문에 민정수석의 스타일, 대통령의 신임 정도에 따라 역할과 영향력은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자리다.

역대 대통령은 가깝고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민정수석에 앉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권재진 민정수석을 오랫동안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 동지’라 부른 문재인 의원, 핵심 측근인 이호철씨와 전해철 변호사 등에게 민정수석을 맡겼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 직후 민정수석비서관을 없애고 민정(민정비서관)과 사정(법무비서관)으로 조직을 분리해 김중권 비서실장(당시) 직속으로 두었다. 하지만 옷로비 사건을 겪자 민정수석을 부활시켰다. 김성재 수석이 이끈 민정수석실은 민정·민원 업무 외에 사회단체와의 채널 기능이 추가됐다.

김영삼 정부 시절 민정수석의 비중은 더 컸다. 사정 기능도 있었다. 임명직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쫓고 ‘존안’ 카드(인사파일)를 만들어 대통령이 개각에 활용토록 했다. 김영삼 정부의 민정수석이던 김영수·문종수씨는 모두 검찰 출신이다.

그에 앞서 5공 때는 민정과 사정을 나눠 각각 수석비서관을 두었다. 당시 이학봉 민정수석의 임무 중 하나는 전두환 대통령(당시)의 친인척 관리였다. 노태우 정권은 ‘민정과 사정 업무의 상호 의존성’과 ‘작은 정부’ 원칙을 내세워 양자를 합쳤다. 그러다 5공 청산 문제로 여권 내부가 시끄럽자 다시 사정과 민정으로 나눴다. 당시 안교덕 민정수석은 노 대통령(당시)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갈등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았다.

민정수석의 업무는 늘 과중하다. 문재인 의원은 이렇게 자신의 수석 시절을 회고했다.

“업무량이 늘 한계 용량을 초과하는 느낌이었다. 무리하다 보니 민정수석 1년 만에 이를 열 개나 뽑아야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민정수석실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다. 재미있는 건 이를 뺀 개수가 직급에 따라 차이가 났다는 거다. ‘업무 연관성에 대한 분명한 증거’라고 우스갯소리를 나누기도 했다.”

민정수석은 인사 잡음이 일면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았다.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각종 의혹으로 사흘 만에 사퇴하자 대국민 사과와 함께 박정규 민정수석과 정찬용 인사수석의 사표를 받았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에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낙마로 정동기 민정수석의 사표가 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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