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취직에 매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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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영남대 대학신문에서 얼마 전 대구지방의 교수 2백명과 대학생 5백명에게 「대학이란 무엇인가」를 물어본 일이 있다. 그때 교수나 학생이나 「지식 있는 사회인 양성」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대답했다. 졸업 후 취업 경쟁에 이기고 안정된 생활을 할 준비 장소로 대학을 본 것이다. 『대학은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그 광범하고 정치한 응용 방법을 교수·연구한다』는 이념은 탈색되고 있었다.
빵이 이념보다 급하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 지난 연말 고흥화 교수 (중앙대·심리학)가 4백명의 대학생에게 한번더 물었더니 대답은 더욱 명쾌했다. 「대학을 다니는 목적」은 「좋은 직업을 얻어 안정된 생활을 하기 위해서」라는 학생이 47.4%로 압도적이다. 25.7%가 「교양을 높이기 위해」, 15·2%가 「진리탐구를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4년을 취직 준비에>
「인생에서 추구하는 것」을 아예 「권력과 지위를 얻어 자신과 가족이 영화를 누리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32·9%나 되었다. 「좋은 자리」취직이 대학의 궁극 목적쯤 되었다.
『대학 생활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취직 준비에 열을 올린다』는 최진천 군 (동아대 법과 2년)의 비판처럼 특히 지방 대학생들의 취업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 「명문 대학」에 못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심정이 「명문 회사」에나 들어가 보상받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는 말처럼 입학하는 날부터 모든 「에너지」가 졸업 후의 진로 탐색으로 향한다.

<추천서 안 받는 곳도>
그래서 각종 취직 강좌는 언제나 초만원을 이룬다. 대학마다 영어 회화반이 있다. 『적어도 실력으로는 서울의 어떤 대학에도 뒤떨어지지 않겠다』는 학생들의 결심은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한편 대학 졸업자의 수요는 점점 늘어나 근년에는 입학 정원도 예년의 4∼5배나 늘렸고 각 분야의 성장 기업에서는 구인난이 심각하기도 하다.
그런데 『필기시험에는 합격했다가도 면접시험 때 전부 떨어진다. 지방 대학 출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불평처럼 지방 대학 졸업생들은 구인난 시대에 구직난을 겪고 있다. 최근 기업체들이 사람을 뽑을 때 시험보다는 서류 전형을 많이 택해가고 있고 서류 전형만 하면 지방대 출신은「전멸」이라고 한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사람이 2만8천5백54명이었는데 그중 시험을 거친 사람은 9천9백24명으로 전체의 3분의1을 약간 넘는다. 나머지 3분의1 이상인 1만4백32명이 추천 「케이스」. 그밖에 친구나 친지(주로 동창 관계)의 소개 또는 현장 실습을 통해 만든 지면이 인연이다. 서울 중심의 문학에서 갖는 지방 대학생의 약점은 이것으로 더욱 분명해진다. 지방 대학의 추천은 괄시받고, 서울정보에 밝은 친구나 동창이 드물고, 서울의 대기업에 실습하면서 접촉할 기회는 많지 않다. 영남대 통계로는 금년 졸업생의 서류 전형 합격율이 지난해보다 많이 늘어서 12%다. 추천서를 아예 안 받는 곳도 많다고 한다.
이런 사정에 대해 충남대 서명원 총장은 이제 『질 향상을 위한 육성책이 시급해졌다. 앞으로 교수들도 기업인들과도 접촉을 갖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기회를 늘려야 할 것이다』면서 『한가지 반가운 현상은 서울에선 그렇지만 차차 대기업의 지방 진출이 늘어가면서 지방에서는 지방 대학 출신을 더 우대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취업에 대해 지 방대학생들이 갖고 있는 불만은 점차 해소되리라고 전망했다. 전남대 최재율 교수 (농업 경제학)도 비슷한 진단을 하고 있다. 『여천공단 입주 기업의 경우 전남대 출신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타 지역의 대기업들도 기업 PR의 일환으로 지방 대학생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한다. J모직 인사담당자 김학규씨 (39)의 말처럼 『인재난 시대에 지방 현장 근무자 확보를 위해서는 지방 대학 출신이 많은 잇점도 있다』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나치다는 자성론>
계속 창출되고 있는 인력 수요에 따라 앞으로 지방 대학이 「호황」율 누리게 된다고 해서 그대로 그 호황의 과실만 따먹으려는 자세를 취할 때 대학이 경기의 「붐」을 타는 영리단체와 다를게 없다는 우려도 한편에선 나오고 있다. 가령 부산의 수산대와 해양대는 최근 들어 「육상 대학」이 되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육상 대학은 취직이 잘 되기 때문이다.
모든 대학 활동은 실용성 위주로 되어간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고 교육함으로써 사회에 봉사할 인재를 기르는 곳이다』라는 새삼스런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이 진리를 찾는 순수한 즐거움이 없을 때 대학은 대학이 아니라고 경상대 정식환 교수(영문학)는 말한다.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 『유레카』 (알았다)라고 외치며 사상 최초로 목욕탕에서 그대로 뛰쳐나와 「스트리킹」을 했다는 그 「유레카」의 희열이 「캠퍼스」에 흘러 넘칠 때 실용적인 지식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나게 된다는 충북대 정범모 총장의 말은 오늘의 지방대학에 하나의 시사점을 던져준다.
대학은 역시 연구의 결과를 발효시켜 교육하고 또 새로운 발효 작업을 계속 할 때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권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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