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 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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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도시 간선도로변에 가로수로 심은 수양버들과 「포플러」나무에서 꽃가루가 심하게 날려 이로 인한 눈병·피붓병·천식 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5월 들어 수양버들과 「포플러」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거리마다 날리고 있는 이 꽃가루는 심한 경우 눈이 내리는 것처럼 쏟아져 「알레르기」성 질병을 일으키는 외에도 달리는 차량의 시야를 막고, 주택가 실내에까지 날아들어 집안을 어지럽히는가 하면, 음식물을 부패시키는 등 시민 생활에도 적지 않은 불편을 주고 있다.
도시의 가로수는 도시의 옥외 환경공간을 아름답고 쾌적하게 조성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시민의 보건·형생·휴양·방재에 이바지하고 아울러 시민 정서에 안정감을 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처럼 시민생활에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 가로수가 도리어 시민들에게 불편과 괴로움을 주는 공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가로수 식재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대책이 마련돼야 함은 당연한 요청이다.
그런데도 수년째 해마다 개화기인 4∼5월께면 가로수 꽃가루 때문에 발병한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도시행정 당국의 무신경 탓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가로경관 조성과 같은 도시녹지 행정에 있어서 외형적인 「꾸미기」나 치장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그 속에서 생활하는 시민의 편의 확보라는 본질적 측면이 언제나 제일의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것은 새삼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
꽃가루 공해가 이렇듯 심한데도 수양버들을 가로수로 심는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수양버들이나 「포플러」는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고 활착율이 좋을 뿐만 아니라 값도 싸고 보기에도 시원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 예산 적게 들고 관리하기 쉽다는 행정상 편의 때문에 정작 중요시돼야 할 시민의 이익이 외면 당하고 있는 꼴이다.
구미 선진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수양버들은 꽃가루 때문에 가로수로는 부적당하다는 판정이 난지 오래다.
이에 비해 은행나무나 「플라타너스」처럼 성장이 약간 느리다 해도 한번 뿌리를 박으면 웬만한 비바람에 잘 견디고 병충해에도 강한 수종이 얼마든지 있다.
특히 가을철 노란 단풍을 이루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길고 매연에 잘 견디는 것은 물론 열매로도 소득을 얻을 수 있어 사후 관리에 성의만 기울인다면 가로수로는 가장 이상적인 수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도시의 인구 급증과 시가지의 팽창에 따라 양적으로 확대되는 경관 조성이란 당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는데는 이러한 장기수보다는 효과가 빠른 속성수 위주의 가로수 조성이 불가피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수양버들처럼 가로수로서의 효용 가치가 없는 수종을 마구 심어 겉치레만 하는 행정이 그대로 용납될 수는 없다.
더우기 이 때문에 시민들이 각종 질병까지 얻게 된다면 이러한 공해 가로수의 조성 및 관리자인 시 당국은 피해자에 대한 민사상 보상 책임까지도 배제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당국은 도로변의 가로수 문제에 있어서도 물량 위주와 편의주의를 떠나서 도시의 건전한 발전과 생활 환경의 쾌적성 보장에 역점을 둔 장기적 안목의 조경 정책을 추진해 주기 바란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단순한 건설·미관보다는 쾌적·안전과 같은 질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때가 왔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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