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적불명|한국 대중가요『리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 나라 대중가요의 최근 경향은 가사의 경우 퇴폐·외설적인 면이 줄어든 대신 허무·좌절 적인 면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으며 곡의 경우 종래의 시대착오적인 「트로트」 풍이나 구미의 유행 「리듬」을 적당히 눈가림한 국적불명의 「리듬」이 크게 유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공연 윤리위원회(위원장 김광섭)의 78년도 1·4분기 가요심의 과정에서 나타났는데, 이에 따르면 전체적인 규제 율은 77년도 4·4분기에 비해 다소 낮아졌으나 가요 개개의 성격을 분석하면 그와 같은 경향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는 것.
경음악 평론가이며 「공륜」 가요심의위원인 서병후씨에 따르면 70년대 후반기에 들어선 우리가요는 초년을 전후하여 이미자·남진·나훈아에 의해 주도되었던 전통적인 「트로트」풍이 차차 자취를 감추는 반면 그 「리듬」에 구미의 「록·리듬」을 교묘하게 가미한 새로운 「리듬」 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요들은 상업적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으나 과연 이런 것이 우리 가요의 바람직한 방향인가를 생각할 때 회의적이라는 것이 서씨의 의견이다.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가요가 요즘 전국적으로 크게 유행하고 있는 혼혈가수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 ,최병걸의 『난 정말 몰랐었네』, 최헌의 『앵두』 등이다.
방송의 가요실무자인 유성화씨 (TBC PD)에 의하면 『종래의 「트로트」 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점에서 가요의 새 방향으로 말할 수 있겠지만 자신 있게 긍정적인 현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 방송가에서는 이러한 노래들을 「락뽕」(록+뽕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밝힌 유씨는 『이런 「리듬」이라도 편곡의 묘를 살리면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한편 경음악평론가 최경직씨는 「록」+「트로트」 계열의 요즘 가요들을 일본의 「연가」 풍이라고 지적하면서 대체로 이런 노래들은 가사도 좋지 않고 음법도 이상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나라 가요가 아직도 일본 노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다』는 최씨는 『정말 좋은 가요가 나오려면 제한된 층에만 사랑 받거나 한 시대에 끝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최근 우리 가요계의 바람직한 현장은 민요에서 발상을 얻어 가요로 발전시킨「보컬·그룹」 「김태곤과 외돌괴」의 『망부석』, 역시 민요·동요 풍으로 독특한 「리듬」을 개발한 「보컬·그룹」 「산울림」의 『아니 벌써』같은 노래의 등장이라고 진단했다.
『망부석』은 꽹과리·목탁 같은 특이한 「악기」를 사용한 특색 있는 노래로서, 『아니 벌써』는 『아니 벌써 동창이 밝았나…』하는 단순한 가사에 독특한 창법 외 노래로서 어느 계층을 막론하고 폭 넓게 유행되고 있다.
그러나 TBC 「라디오」의 최근 가요 「베스트·텐」에 따르면 1위인 전영의 『어디쯤 가고 있을까』(「포크」), 4위인 혜은이의 『감수강』(민요+「포크」)을 제외하면 『아니 벌써』가 하위에 등장하고 있을 뿐 대부분이 「록」+「트로트」 계열의 가요여서 「디스크」 판매나 방송청취율은 역시 이들 가요들이 석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있다.
물론 그런 경향의 가요라고 해서 반드시 적대시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만 80년대를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현실에 맞지도 않고 가요의 흐름을 오도할 가요들이 유행되는 것은 견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좀더 좋은 가요가 나오기 위해서는 작곡가·작사자나 가수는 물론 모든 가요관계자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