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무대에 어울리는 「대작」아쉽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서울 한복판에 새로운 명물이 하나 생겼다. 세종문화회관과 그 언저리.
광장에 있는 분수가 모양을 바꿀 때마다 환성을 울리는 어린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도 흐뭇하고, 나들이 양복을 입기는 했지만 시골할아버지에 틀림없는 영감님이 평생 반려의 할머니 손을 잡고 고갯길을 오르듯 넓은 돌계단을 허위허위 넘어 보는 것도 미소롭다.
그리고 이 웅장한 돌집이 우리의 기술과 경비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면 또 한번 입을 벌려 놀랄것이고, 이 건물이 할아버지에게 주는 정신적 보탬이란 그런 효과에 만족해야하는 것이겠지만, 미래를 창조하는 문화의 전당이기를 기대하는 시민들에게는 이 건물의 무대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에 보다 날카로운 눈총을 집중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것은 이 건물이 국가적인 식전이나 집회에도 쓰이는 다목적「홀」이기는 하지만, 세계 「챔피언십」을 놓고 다투는 직업권투선수에 대한 열광이나 인기가수의 청백전같은 오락에 그쳐서는 안될 곳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14일의 개관행사에 이어 21일부터 개관기념 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이 예술제는 개관을 기념하는 축전인 동시에 문화회관의 성격과 방향을 스스로 천명하는 절차로 받아들일수도 있지 않을까.
그 성격과 방향은 우선 국가적 문화시설로서의 성격과 방향으로서의 대형화.
따라서 실험적이거나 전위적인 시도는 배제되고 정부의 문화적 요청에 부응하는 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개관행사의 『위대한 전진』이 그렇고 27, 28일에 공연된 종합극 『북벌』이 그렇다. 「효」의 사상이 바닥에 깔린 가극 『심청전』이나 무용극 『바리공주』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실험성이 배제된 보수적인 무대처리로 과연 대강당의 거대한 무대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법론이 정립될 것인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보수성을 고수한 『위대한 전진』과 가극 『심청전』은 인간미를 넘어버린 초대형의 무대공간을 두고 당혹과 차질에서 헤어나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 당황함은 관객도 마찬가지.
이 거대한 공간을 손아귀에 넣고 인간적인 감동을 빚어낼 수 있는 것은 천재의 영역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념예술제 첫날에 초연된 강석희씨의 교성곡 『용비어천가(용비어천가) 』는 그런 점에서도 많은 시사를 던져 준다.
안익태씨의 『한국환상곡』이 1930년대의 민족적 의지를 음악화한 것이라면 『용비어천가』는 1970년대의 음악한국을 증언하는 기념비적 성격의 작품으로 생각되는데 그 성공적 요인의 하나는 작품의「마스터·플랜」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무대공간이 적절하게 계산되었었다는 점이라고 보겠다.
따라서 『용비어천가』는 세종문화회관만의 「고전」일 수 있다. 기념예술제는 앞으로 7월까지 계속된다. 그 성과를 진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다만 한가지 뚜렷한 사실은 이 거대한 무대공간의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거시적이고 치밀한 장기계획으로 연차적인 기획 제작과 창작 진흥의 「마스터·플랜」이 있어야겠다는 점이다.
잔향이 문제되는 음향효과는 대강당이나 소강당 모두 나무랄 데가 없었다. 조명은 독일의 시설을 장치한 탓으로 아직 우리 조명기사들에게는 손에 익지 않은 것 같으나 이에 익숙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