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교포사회가 치르는 대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국 동부의 어떤 대학 학생들은 강의실에 들어서는 한국인 교수에게 일제히 손바닥을 내밀었다. 한국 사람들은 돈이 많다니 우리들에게도 좀 뿌려 보라는 무언의 조롱이었다.
「워싱턴」 근교의 어떤 국민학교 교사들은 한국 어린이들이 주는 작은 성탄절 선물을 매정하게 거절했다. 한국 학생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도서관 직원들은 「팁」을 달라고 농담을 하고, 식료품 가게를 경영하는 교포들은 고객들한테서 사례(Kickback)는 얼마나 주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박동선 바람은 이렇게 세차다.
어떤 직장에 다니는 한국인이 동료 직원 다섯 사람을 부부 동반으로 저녁 초대를 했다. 동료 직원들은 어떤 종류의 만찬인가 하고 물었다. 그 한국인은 박동선 「스타일」의 만찬이라고 농담으로 대답했다. 다섯 쌍의 손님들은 남자들은 「블랙타이」, 여자들은 「이브닝·드레스」의 정장을 하고 나타났다.
「시카코」의 어느 교포 실업가는 사업상 자주 하던 「워싱턴」출입을 최소한으로 주려야 했고, 취직을 위한 면접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퇴짜를 맞은 사람들도 더러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70년대 들어서서 급속히 늘어난 재미 한국인의 숫자는 30만명 정도. 그들 대부분이 박동선 사전으로 비뚤어진 한국의 영상의 피해를 다채롭게 보고 있다.
「예일」 대학의 한국 유학생이 4만「달러」 짜리 「파티」를 계획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보도는 한국 교포들의 수난에 한층 부채질을 하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한국인이 모두 박동선의 사촌쯤 되는 것으로 안다.
금년 봄 한국의 4개 시중 은행이 「로스앤젤레스」에 지점을 설치하려고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허가원을 냈을 때 겪은 어려움도 한국인 사회에 미치는 박동선 사건의 영향이 심리적인 것 이상임을 증명한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미국과 범인 인도 조약을 맺고 있지 않은 나라의 은행에는 지점 설치를 허가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당 법조문을 바꾸겠다고 했다.
한국 은행들은 유력한 변호사를 동원했다. 공개 청문회까지 열리고, 그 결과 주정부가 법조문 개정을 포기하는 대신 한국의 은행들은 범법 행위가 있을 때는 수사에 전적으로 협조한다는 각서를 쓰고 지점 설치 허가를 받을 수가 있었다. 「캘리포니아」주정부는 한국 사람들을 일단 박동선씨와 동류로 보고 잠재적인 범법자, 추악한 한국인들로 취급한 것이다.
박동선 사건에 관한 미국 신문들의 끝없는 대서특필은 미국 사람들의 의식 속에다가 박동선이라는 기피 인물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영상을 뜨개질하듯 착실히 박아 주는 꼴이 되고 있다. 이런 대세에 편승하여 「뉴욕」「필라델피아」 「볼티모」같은데서 한국 상인 배척 운동이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정도가 가장 심각한 곳이 「블티모」이다.
흑인 빈민가에서 한 달에 두 번 나오는 「굿·뉴스」라는 시원찮은 신문은 흑인 빈민가에 가게를 차려 낮에 만 나와서 돈을 긁어모아 밤에는 교외의 아늑한 주택가로 나가는 한국 상인들을 규탄하는 운동을 선도했다.
「볼티모」의 한국인들은 공포에 떨고 대책을 협의했지만 「굿·뉴스」는 그 지역 출신 하원 의원「매런·미겔」에게까지 반 한국인 운동에 가담하라고 계속 압력을 넣었다. 이를 보다 못한 「볼티모·선」지가 2월14일 사설에서「굿·뉴스」의 처사를 「캘리포니아」 백인 사회에서 일어난 반 동양인 운동이나 독일의 반 유대인 운동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라고 힐책하고 나섰다.
박동선 사건 자체는 이제 l년 반만에 해결 단계에 들어갔다. 어떤 형태가 되든지 간에 김동작씨의 증언으로 미국 하원 윤리 위원회는 사건 조사 보고서를 여름까지 제출하고 사건 조사를 종결지을 참이다. 그러나 박동선 사건이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는 해결된다고 해도 미국에서 손상된 한국 사람들의 영상, 그 때문에 한국 교포들이 받는 수난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와이」주 출신 상원의원 「대니얼·이노우에」같은 사람도 선량한 한국 교포들이 박동선 사건 때문에 도매금으로 죄인시 되는 사태를 개탄하는 성명을 국회 의사록에 실었다. 그러나 아직은 「이노우에」같이 한국 문제에 관해서 한국에 유리한 직언을 할만큼 용기 있는 정치인이 거의 없는 것이 문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