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전시] 최만린 회고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2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 추상조각 1세대 최만린(79)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가 김용관]

중학교 3학년이던 1949년 얼굴 소조로 제1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 입선했다.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대 조소과에 진학했다. 58년 ‘이브’ 시리즈를 발표하며 조각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지러진 듯, 불탄 듯한 이 여성 누드 조각은 사춘기 때 참혹한 전쟁을 겪고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목격한 작가가 되살려낸 생명이었다.

“‘이브’는 폐허의 초토 속에서 나온 것으로, 해체된 우리의 상태를 쌓아 올린 것이다. 나 자신의 기념비요, 생의 파편을 주워서 쌓은 거대한 생존의 모뉴먼트였다”(2001년 ‘월간미술’과의 인터뷰)고 작가는 돌아봤다.

이번 전시 제목은 그저 최만린, 작가의 이름 석 자다. 한국 현대 조각의 선구자 최만린(79)의 회고전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7월 6일까지 열린다. 국내에서 수학한 1세대 조각가인 최씨는 해방과 전쟁이라는 격변을 몸소 겪은 후 한국 조각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독자적 조형 언어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장(1997∼99)과 서울대 미대 교수(1967∼2001)를 역임했다.

이번 전시는 ‘이브’ 이후 한국적 조각을 고민하며 서예에서 답을 찾은 ‘천지’, 원만한 곡선의 ‘태’ 시리즈, 지금도 신작을 내놓고 있는 동그라미 형태의 ‘O’ 시리즈 등 그의 60년 조각 세계를 인간·뿌리·생명·비움 네 개의 대주제로 응축했다. 조각·석고모델·드로잉 200여 점이 출품됐다.

“‘이브’에서 ‘천지현월’ 시리즈로 넘어갈 때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이때 연필을 버리고 붓질을 시작했죠. 붓은 찍고 뗄 때의 느낌이 달라요. 점·선·면의 구분이 애매해지죠.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던 지식인으로서의 자아를 버리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언제나 주워담기보다 비우는 것이 어렵다”는 작가의 설명이다. 그의 작품은 서울 올림픽공원, 삼성동 무역센터 앞마당, 헌법재판소 로비, 일산 호수공원 등에서도 만날 수 있다. 02-2188-6000.

권근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