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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 <19화> 암환자와 병원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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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카드 이*택 님. OO병원 87,000원 정상승인.

아침에 일을 하고 있는데 문자가 한 통 온다. 아버지의 방사선치료가 잘 끝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루에 10분씩 매일 방사선치료를 받고 있다. 문자가 온 이후,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해 치료는 잘 받으셨냐는 전화를 한다. 방사선치료의 경우 대개 하루 9만원 전후, 항암치료의 경우 3일 입원하면 10만원 정도의 비용이 나온다. 적지 않은 금액일 수 있지만, 이 정도의 금액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옛날에는 "암환자는 병원비 내다가 파산한다"는 말이 있었다. 나는 체감하지 못했지만, 중증질환자에 대한 의료비 지원이 적었던 1990년대까지는 통용되던 말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제도가 개선되고, 2014년 현재에는 암환자들이 돈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특히나 2005년 이후 정부가 꾸준히 중증질환자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대폭 강화하면서, 암환자가 병원비 때문에 망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정말 '옛말' 수준이 됐다.

실제로 아버지가 항암치료로 입원한 30여 차례 동안, 건강보험이 되지 않은 비급여 항암제를 맞으면서 치료받는 사람은 딱 1명 봤다. 암환자들은 모두가 중증환자 특례도 받는다. 암 치료를 받는 대형병원의 진료에 대해서는 전체 의료비의 5%만 내면 된다. 한 번 입원을 하면 몇 만원 이하의 진료비가 나온다.

물론 예외도 있다. 방사선 치료다. 워낙 비싸 중증환자 특례를 받더라도 비싸다. 아버지의 경우 하루에 8만 7000원 정도가 나온다. 10분 진료를 받고 8만원이라니 부담스럽지 않을리가 없다. 지금 받고 있는 방사선치료야 10회로 끝난다. 물론 방사선설계비 등을 포함한 150만원 정도의 진료비가 부담스럽지 않다고는 말 못하지만.

한 때는 방사선 치료비가 엄청 부담이었던 때도 있었다. 처음에 아버지가 아프고 사업이 기울어 질 때 였다. 매일 아침 잠을 깨우는 문자메시지 소리는 방사선치료비였다. OOOO병원 8만원. 작은 월세방에서 살고 있었던 내게 그 메시지보다 무서웠던 것은 없었다. 33회의 방사선치료.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 때는 다른 어떤 것보다 두려웠다.

수술비 역시 아직은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물론 오랜 시간 수술을 집도하는 의료진의 공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수술 후 2주 동안 입원을 하고 567만원이 나왔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숫자다. 저 병원비를 어떻게 낼 것이냐는 걱정과 생각보다 덜 나왔다는 안도감이 미묘하게 교차했다. 3개월 할부로 해서 납부했다.

오히려 아버지의 식도암 수술 전날까지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족 중 암환자는 처음이라, 병원비가 도대체 얼마가 나올지 짐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1000만원 정도 예상했었다. 독자들 중 일부는 "월급 모아서 적금이라도 들었다면 걱정이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첫 월급 등 그동안 얼마씩 저축해 놨던 돈은 1000만원 정도였지만, 이미 수술 몇 달 전 아버지의 기울고 있는 사업을 돕느라 드렸다.

환자들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병원비 항목은 바로 병실비가 될 것이다. 수술환자들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2인실을 며칠 이상 써야 한다. 1인실의 경우 40만원 이상, 2인실은 30만원 이상이 매일 추가된다. 하루 1만원 꼴인 다인실(5인실 또는 6인실) 입원비를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다.

상당수의 환자들은 수술 직후 중환자실을 거쳐서 간다. 수술이 큰 경우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집중 진료를 받아야 하는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역시 중환자실에 하루 정도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좀 오래 있기를 바랐다. 2인실 외에는 방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1인실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하루만에 중환자실에서 나왔다.

나 역시 아버지의 입원을 앞두고 고민했던 적이 많다. 한 번은 아버지가 아프셔서 응급실에 입원을 시킨 적도 있었다. 응급실은 불편하고 많은 응급환자들이 있어 치료를 제대로 못 받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1인실보다는 싸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3일간 몇 십 만원정도를 낸 기억이 난다. 100만원은 넘지 않았으니 다행인 셈이다.

암 치료 2년차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그래도 좀 여유가 생겼다. 수술보다는 주로 항암제 치료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버지 역시 꾸준한 진료로 인해 '짬밥'이 좀 생겼다. 아프면 일단 가서 외래를 끊는 것은 기본이다. 어떻게든 읍소를 해서 외래를 받는다. 담당 교수가 진료를 하지 않으면 일반의사(강사)라도 진료를 보게 해달라고 읍소를 하신다. 어차피 강사가 진료를 보더라도 담당 교수에게 보고를 하고 처방을 하기 때문에 진통제 처방 같은 것은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항암제 약물치료의 경우 대개 2박 3일 동안 진행한다. 하지만 다인실 병실이 나오지 않으면 나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겠다고 하면 대개 1주일 안에 병실이 나온다. 암이라는 것이 2주마다 치료를 받던, 2주 + 3일마다 치료를 받던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박2일짜리 항암제의 경우 의사에게 읍소를 해서 새벽 일찍 와서 하루짜리 당일 입원실 등에서 하루 종일 주사를 맞고 저녁에 퇴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새 규정이 생겨 걱정도 된다. 바로 정해진 기간을 넘어서 입원을 하게 될 경우 1인실 또는 2인실 등 상급병동을 사용하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입원이 되는 규정이 생겨났다. 병원에서 항암제 투약이 늦어져 입원이 하루씩 늘어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게다가 추가 검사를 하거나, 혈압이 너무 낮아서 진료가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 간호사에게 확인과 읍소를 해서 반드시 입원 당일 저녁부터 투약이 될 수 있도록 확인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어 보인다다.

물론 아버지의 병원비가 반가울 때도 있다. 매년 2월 연말정산을 할 때다. 암 환자는 세법상 장애인으로 분류돼, 아버지의 병원비 전액이 공제된다. 한 100만원 정도씩 돌려받는 효과가 있다. 돌려받은 월급으로 아버지와 고기 구워먹으면서 "아버지 덕분"이라고 하고는 웃는다.

* ps. 얼마 전 부부싸움을 했다. 화해하고 나서 아내는 내게 "술 먹고 집에 오면 코골이 소리가 더 커서 각방을 쓸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엄포를 놨다. 나는 "각방으로 해놓으면 아버지 놀러 오시라고 해서 낮잠이나 같이 자야겠다"고 했다. 그러니 "응, 아버님 오시면 좋지"라고 한다. 기분이 좋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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