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공 평화조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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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등소평의 일본방문 용의표명을 계기로 일·중공간의 평화우호조약 조기체결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2월 조인된 양측간의 장기무역협정과 더불어 앞으로 만약 일·중공 평화조약까지 체결된다면 동아시아의 정세는 미·일·중공을 한 축으로 하고 소련 한 나라를 또 한 축으로 하는 3대1의 대립양상으로 재편될 소지가 굳어졌다. 전후 한때 존속했던 미·일 동맹 대 중·소 동맹의 이원적 대결도식이 명실공히 완전히 청산되는 것이다.
일본은 물론 일·중공 평화조약이 반소 통일전선에의 가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고는 있으나 거시적으로 볼 때 그것이 소련의 아시아 진출을 저지하는데 기여하리란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의 자위력 증강과 중공의 반소노선이 연결되어 아시아 나라들 자체의 힘에 의한 대소 견제력이 강화되는 것은 조금도 반대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중공의 입장에서도 아시아의 일본과 서구의 EEC를 끌어들이는 것은 대소전략과 경제건설상 가장 긴요하고도 바람직한 일이다.
일본 역시 소련 팽창주의의 압력을 중화시키고 국제적인 경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중공과의 접근을 서두를 필요에 직면해 있다.
일·중공 평화조약은 말하자면 이 3가지 공통이익에 대한 상호양해가 낳은 산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가지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반패권 조항의 명문화를 둘러싼 양측간의 견해차였다. 중공이 그것을 적극적 반소로 구체화하려는데 반해 일본은 그것이 『제3국 즉 소련을 적대하는 것이 아님』을 명문화하자고 한 것이다.
아울러 자민당 내에서도 미끼, 오히라, 다나까파의 적극론과 아시아연의 나다오파 및 청남회의 신중론이 대립해 후꾸다 수상의 외교선택을 한동안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 논란은 결국 반패권이 공동행동을 의무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호 확인하는 선에서 일단 타결을 본 것 같다.
앞으로 이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소련 군사력의 위험도 측정에 관한 양측간의 의견교환이나 인사교류는 더한층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되지만 우선엔 비정치적 경제교류와 협력관계증진에 더 큰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중공은 현재 4개의 근대화를 추진함에 있어 건설자금·생산설비·기술 및 경영요원 부족으로 큰 불편을 느끼고 있어 일본으로부터의 플랜트류 수입·건설자재와 기술·자본도입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역시 중공 이외의 나라들에 대한 공산품수출이나 일차산품 수입의 길이 협착해짐에 따라 중공으로부터의 원유·석탄 등 자원수입과 공산품수출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상호보완적인 확대균형의 심화과정에서 양측은 우선 향후 8년간에 걸쳐 약 2백억달러 규모의 교역거래를 약속하고 있다는데 그 중에서도 상해·본계호·안산 등지의 항만·철강 콤비나트 건설협력이 우선적으로 구체화될 것으로 내다보인다.
일·중공 사이의 협력관계가 이처럼 긴밀해짐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입장 또한 더한층 미묘해지고 복잡해질 것 같다. 일본은 원칙적으로 한반도의 현상안정을 바라고 있고 중공 또한 표면상으론 북괴를 지지하면서도 내심으로는 현상안정을 희망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양자관계의 긴밀화는 한반도안정에 한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반면 소련의 북괴지원이 강화됨과 아울러 중공이 일본에 대해 북괴와의 관계증진이나 남북 등거리외교방침 채택을 종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에 한국으로선 특히 이점에 유의해서 앞으로의 외교대책에 임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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