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마 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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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봄의 꽃가마가 남해안에 상륙했다. 이미 진해에서는 벚꽃이 피고 선봉장 산수유는 창경원에까지 당도하고!.
꽃나무는 월중의 평균기온이 5도C 이상이 되면 봉오리진다. 따라서 낮 수은주가 10도C만 오르면 꽃가마는 움직인다.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것은 한 나무에 한 송이라도 폈을 때를 말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서너개가 폈을 때를 말한다.
그것도 나무에 따라 다르다. 가령 벚꽃의 경우에는 20내지 30%가 개화했을 때를 말한다.
그런가하면 한 그루에 꽃 하나씩밖에 피지 않는 나무의 경우는 10%가 개화했을 때를 말한다. 어떻든 꽃 한두 송이로 꽃가마를 꾸미지는 못한다.
따라서 꽃가마는 적어도 꽃들이 거의 만개될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그리고 꽃피기 시작했을 때부터 만개까지는 보통 6일내지 10일이 걸린다.
꽃가마의 속도는 매우 더디다. 보통 북위34도까지는 위도1도를 올라가는데 5일쯤 걸린다. 34도 이북에서는 10일 이상이 걸린다. 그러니까 진해의 벚꽃가마가 서울에 당도하려면 앞으로 20일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꽃가마의 속도는 이렇게 보면 대충 하루 20㎞로 잡으면 된다.
그러나 꽃가마는 고지에 약하다. 또 꽃에 따라 속도도 다르다.
매화는 1백m를 올라가는데 12일이 걸린다. 벚꽃의 경우는 해발고도 1백m를 오를 때마다 2일이 뒤진다.
그러나 꽃가마의 나그네길에는 뜻하지 않은 복병도 많다. 꽃샘추위도 있고, 노망한 봄눈도 있다.
이미 벚꽃가마는 10일이나 발이 묶여 있다. 서울의 개나리들도 봄 채비를 못하고 있을 정도다.
꽃가마의 행차가 있을 때에는 날씨도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이동성 고기압과 저기압이 번갈아 가며 짓궂게 구는 것이다.
아무리 늦더라도 꽃가마의 행차를 끝내 막지는 못한다. 새달 그믐날쯤 되면 서울의 뭇 선남선녀들도 꽃가마를 마중하기에 정신이 없어질 것이다.
꽃가마가 화려할수록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들뜨게 된다. 그러나 누구나 다 즐거워지는 것은 아니다.
꽃 사이로 나풀나풀 나비가 춤을 추고 버들가지 위에선 꾀꼬리 운다. 만물도 모두가 즐기는 이때 사랑하는 백성들은 어이 지내나.
고종황제도 이렇게 읊은 적이 있다. 봄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것이 아니다. 꽃가마라고 누구에게나 화려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야속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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