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션·아파트의 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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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은하맨션 화재는 우리주변 곳곳에서 하루가 멀다시피 치솟고있는 고층아파트의 잠재적 위험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경종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사고다.
맨션·아파트 화재사고는 75년 한강 로열·맨션, 77년 타워·맨션, 렉스·맨션에 이어 벌써 4번째다.
새로운 주거패턴으로 국민생활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아파트이지만, 거기에는 또 그 나름의 사고요인과 취약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선 아파트는 건물자체 높이의 고도화뿐만 아니라, 특유의 밀집구조 등 여러 특수성 때문에 불이 났다하면 대피와 소화작업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건물자체도 일반적으로 외관과 경제성에 치우쳐 내화도가 얕은 경향이 많다.
여기다 비닐벽지·화섬제 양탄자·커튼 등 화재가 발생하면 맹독성 가스를 방출하는 가연물질이 많아 인명피해가 커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볼 때 고층아파트와 같은 복잡한 주거환경 속에서는 재해에 대응하는 방비나 소방대책도 그만큼 새롭고 철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까지 써온 소방용 사다리차 한가지만 하더라도 그 효용높이는 기껏 32m로 9층 이상의 건물에 대해서는 무력하다. 물탱크차도 가스·유류·화공약품 등 특수인화물질에 의한 화재에는 쓸모가 없다.
때문에 아파트와 같은 고층건물의 화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방장비의 현대화와 함께 건물주와 사용자가 다같이 소방법상의 의무규정을 솔선, 엄격히 이행함으로써 자체소방시설과 대피장비 등을 갖추는데 적극성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는 해당건물의 주민들이 대피하기에 충분한 규모의 통로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된 비상출구의 설치는 물론 가정마다 줄사다리·로프 등을 비치하도록 하는 것 등이 당연히 포함돼야한다.
특히 아파트와 같은 고층건물에 화재가 일어났을 때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불이나 연기를 보고 겁을 먹는 공황이란 이상심리현상이다.
인명피해는 대부분 공황에 빠져 이성을 잃는데서 빚어진다. 은하맨션 화재에서도 어린이들의 어머니가 좀더 침착했더라면 희생을 줄일 수 있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화재시 이성을 잃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대처하고 피난하는데는 무엇보다도 평소의 반복훈련이 필요하다. 또 인구가 밀집한 고층아파트에는 안전통제 시스팀을 갖춘 건물 자체의 안전조직이 동마다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구의 조직적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고서는 신속한 대피나 진화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더우기 어린이나 노약자 및 신체부자유자에 대한 구조는 기대조차 할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와 함께 아파트주민의 지나친 자기중심적 폐쇄성에 대한 반성도 촉구되어야 마땅하다.
이번 화재에서도 불더미속의 어린 자매들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비정한 이웃은 자신들이 대피하기에만 급급했다 한다.
아파트단지는 이질적 개인들의 집단으로 구성돼 자칫 폐쇄적이고 이기적 생활태도를 갖기 쉽다. 그러나 재난으로 절박한 위험에 처한 이웃을 외면할 정도라면 이웃과 더불어 살려는 의사조차 갖지 앉은 파렴치라 아니할 수 없다.
아파트도 단독주택이나 마찬가지로 인간생활의 근거인 동시에 지역사회 구성의 단위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재난에 대한 자기방호도 이웃과 연관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윤리이전의 당연지사다.
남이야 어찌됐든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극단적 이기주의는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도 이웃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종국에는 공동체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아파트와 같은 현대적 주거생활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안전관념과 함께 새로운 모럴의 생활화가 이루어져야 하겠음을 강조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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