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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 달린 광부헬멧 쓰고 … 갈라타사라이식 추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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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은디아예가 경기 중 관중석이 무너지는 사고로 쓰러진 아이를 대피시키고 있다. [카날플러스 화면 캡처]

축구 경기장은 포연 없는 전쟁터지만 공동체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공간이기도 하다. 축구 스타들은 물질적 지원과 여러 가지 퍼포먼스로 형제애와 박애정신을 실천하며 연대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브라질 월드컵 본선 출전을 눈앞에 둔 스타 중에도 주위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팔을 걷어붙인 ‘의인’이 적지 않다.

 크로아티아·세르비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 발칸반도 연안 출신 축구 선수들은 18일 고국의 홍수 피해 복구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발칸반도 중부 지역에 시간당 최대 300mm의 폭우가 쏟아지며 120년 만에 최악의 홍수가 났다. 4조원의 재산 피해와 1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선행을 실천했다. 브라질 월드컵 본선 F조에 속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미드필더 미랄렘 피야니치(24·AS로마)는 수재민을 돕기 위해 23일 수도 사라예보 시내에 위치한 약국 한 곳의 의약품을 통째로 구매해 수재 현장에 보냈다. 현지 매체 ‘아바즈’는 “피야니치가 해당 물품이 필요한 곳에 적절히 전달되도록 끝까지 관심을 기울였다”고 보도했다. 사페트 수시치(59)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대표팀 감독 또한 수재민을 위해 소정의 금액을 기부하며 피야니치와 뜻을 같이했다.

 A조 크로아티아 대표팀 미드필더 루카 모드리치(29·레알 마드리드)는 23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크로아티아·보스니아·세르비아의 이재민들을 지원하고 힘을 모아 달라’는 문구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25일 열리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함께 훈련하던 레알 마드리드 팀 동료도 모드리치와 함께 사진에 등장해 힘을 보탰다. 니코 코바치(43) 크로아티아 대표팀 감독과 베테랑 공격수 이비차 올리치(35·볼프스부르크) 또한 최근 이재민들이 모여 있는 지역을 방문해 크로아티아대표팀 이름으로 13만 유로(1억8000만원)를 기부했다.

 C조 코트디부아르의 간판 골잡이 디디에 드로그바(36·갈라타사라이)는 대형 탄광 사고로 실의에 빠진 터키 국민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다. 18일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소속팀 홈구장 튀르크텔레콤 아레나에서 열린 에르시예스스포르와의 터키 프로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드로그바는 동료와 함께 전등이 달린 헬멧을 쓰고 그라운드에 입장해 눈길을 끌었다. 13일 터키 마니사주 소마에서 발생한 탄광사고 희생자 301명을 추모하기 위한 이벤트였다. 그라운드 입구의 터널을 마치 갱도 속을 걷듯 빠져나온 갈라타사라이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줄지어 서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개인적으로 100만 유로(약 14억원)를 기부한 드로그바는 이를 취재하는 언론 관계자에게 “이런 일로 나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없다. 기사에 내 이름을 쓰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터키축구대표팀 멤버들도 20일 소마 지역에 마련한 희생자 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월드컵 출전자는 아니지만 세네갈 국가대표 알프레드 은디아예(24·레알베티스)가 경기 도중 선보인 의로운 행동도 박수를 받았다. 18일 스페인 팜플로나 에스타디오 엘 사다르에서 열린 오사수나와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경기 도중 관중석 펜스 일부가 팬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자 은디아예가 곧장 사고 장소로 달려가 쓰러져 있던 어린아이를 구했다. 중심을 잃은 팬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두 팔로 아이를 안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은디아예의 행동이 고스란히 TV 중계화면에 잡히면서 화제가 됐다. 임대 신분으로 뛰고 있는 소속팀 레알베티스 팬들은 물론, 원소속팀 선덜랜드 팬들도 SNS 등을 통해 은디아예에게 찬사를 보냈다.

송지훈·박린 기자

세계 축구팀도 세월호 애도

세월호 사고에도 국제 축구계가 함께 아픔을 나누고 있다.

 독일 대표팀 페어 메르테자커(30)는 ‘한국 세월호 사고 피해자와 가족에게 마음을 전합니다’라는 내용의 영문을 SNS에 올리고, 한국어로 ‘기적을 빕니다’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박지성(33)이 뛰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자철(25)과 박주호(27)가 속한 마인츠 등 한국과 인연이 있는 유럽 구단도 애도의 뜻을 홈페이지 등에 올렸다. 지난 18일 스페인 알메리아와 아슬레틱 빌바오의 경기에서는 LED 광고판에 한국어로 ‘아픔,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라는 문구가 나왔다. 알메리아 유스팀엔 김영규와 김우홍(이상 19)이 뛰고 있다.

 일본 프로축구 J리그 사간도스의 윤정환 감독은 베갈타 센다이 원정을 마친 후 “나의 조국에서 사고가 났다. 함께 슬퍼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이튿날 선수단을 데리고 동일본 대지진이 났던 후쿠시마현을 찾아 봉사활동을 했다. 윤 감독은 “지진 쓰나미로 부모를 잃은 아이도 축구 할 때는 활짝 웃었다. 축구가 슬픔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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