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길 현장 르포] 경주 보문단지 봄 나들이 관광객 짜증·실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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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했던 휴양지가 너무 요란스럽게 변했네요.곳곳에 술집이 들어서 아이들 보기에도 민망스럽습니다.”

얼마전 경주 보문관광휴양지(보문단지)에서 가족과 함께 봄 나들이를 한 이종대(44·사업·포항시 죽도동)씨는 “지역의 자랑거리인 보문관광단지가 대도시 주점가처럼 변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연간 5백여만명의 내·외국인들이 이용하는 보문관광휴양지가 허술한 관리로 ‘휴양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유흥가로 변한 관광단지=경주시 신평동 보문단지의 중심가인 경북관광개발공사 건물 일대는 유흥가를 방불케 한다.공사 건물 맞은편 상가 건물은 붉은색·노란색 등 원색의 간판으로 뒤덮여 있다.S·E·H 등 가요주점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스포츠마사지클럽에 안마시술소까지 등장했다.

멋진 한옥으로 꾸며진 이 일대 식당가 곳곳에도 노래방 간판이 붙어 있다.나이트클럽·가요룸 등도 커다란 입간판을 설치해 손님들을 유혹한다.

식당들만 들어서 있던 예전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전주에서 왔다는 50대 주부는 “술집이 너무 많고 간판도 어지럽게 널려 아름다운 전경을 해치고 있다”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관리 부실=4차로의 단지 중심도로는 곳곳을 덧대붙여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다.차선도 지워지거나 차량 바퀴 자국이 찍혀 흉물스럽게 변했다.인도를 따라 잘 만들어 놓은 자전거 전용도로에는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한 철봉 10여개가 버티고 서 있다.

폭 2m정도의 자전거 도로 중앙에 너비 50㎝정도의 뒤집어진 U자 형태의 철봉이 박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철봉에 칠해놓은 페인트도 대부분 벗겨져 있다.

개발공사 뒤 상가로 통하는 계단은 자전거 대여점이 내놓은 자전거로 막혀 있고,인근 보문호의 보트장 옆 산책로변 1백여m는 잔디가 벗겨진 채 방치돼 있다.봄·여름철 비가 자주 오지 않으면 보문호에 녹조가 번지면서 죽은 물고기가 떠올라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도 문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보문호를 따라 가며 만들어 놓은 좁은 산책로를 마구 달리는 바람에 산책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사고 우려가 높지만 단속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관광객들은 “관리 소홀로 훌륭한 관광지의 이미지가 흐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원인·대책=보문단지 관리를 맡고 있는 경북관광개발공사 측은 1979년 외국인 이용자를 겨냥해 이 곳 3백여만평을 개발했다.이후 내국인 이용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정적(靜的)인 휴양지에서 동적(動的)인 관광지로 개발 방향을 바꿨다.쉬는 곳에서 즐기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방침에 따라 노래방·술집 등을 유치했다.

공사 관계자는 “밤에 즐길만한 시설이 없다는 이용자들의 불만을 고려했다.이 덕분에 침체됐던 단지가 활기를 되찾았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상인들의 반발 등으로 간판 등 각종 시설물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하고 “종합적인 정비 계획을 세워 문제점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홍권삼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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